매일신문

[취재현장]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

이통원 경제부 기자.
이통원 경제부 기자.

얼마 전까지 '친척보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주민이 더 가깝다'며 '이웃사촌'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쓰였다. 하지만 근래에는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게 되면서 '이웃사촌'이란 단어가 생소해졌다.

그래도 짧게는 20년, 길게는 30~40년 넘게 한 마을이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에겐 정(情)이란 게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수십 년 동안 한 아파트에서 살던 주민들이 단번에 갈라서는 모습이 취재 과정 중 여과 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 대구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인 아파트 5개 단지를 취재차 방문했다. 해당 아파트는 모두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수성구에 있었다.

범어우방청솔맨션(194가구), 범어청구푸른마을(378가구), 청구성조타운(445가구), 만촌메트로팔레스(3천240가구), 우방오성타운(496가구)이다. 이들 아파트는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

평온할 것만 같던 아파트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두고 주민 간 갈등이 고조된 상태다. 사업을 추진 중인 한 아파트에선 30년 동안 한 동네에서 살던 '이웃사촌' 간 고소전도 벌어졌다.

처음 제보를 받고 현장에 방문했을 땐 단순히 찬성파와 반대파의 서로 다른 목소리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때까진 고소 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현장에서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찬성하는 쪽을 응원하며 내걸린 설립 안 된 '추진위 설립 축하' 현수막이 눈에 띄었고, 개인 전화번호까지 내걸고 결사 항전에 나선 반대파 주장도 시야에 들어왔다. 이들은 '새롭게 탄생하는 아파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는 측'과 '낡은 아파트를 고쳐서 뭐 하냐는 측'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실제로 만난 이들의 표정에선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자신의 삶의 터전이자 재산이 상대 측 때문에 잘못될 수 있다며, 입장 차를 보인 주민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여기서 살다가 생을 편안하게 마감하고 싶다"는 이야기부터, "돈벌이에 환장했다" "다 거짓말만 하고 있다. 저쪽은 믿으면 안 된다"는 등의 수위 높은 발언까지 서슴지 않게 나왔다. 이들은 짧게는 십수 년에서, 길게는 아파트 준공 때부터 함께 살아온 이웃사촌이라는 점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물론 리모델링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주장할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단순 이웃사촌 간 갈등이 사회문제로까지 확산하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사회 분위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더욱이 문제는 앞으로 이런 아파트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란 우려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대구에서 추진 중인 곳은 5개 아파트뿐이지만, 노후 아파트에 대한 리모델링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예측에서다. 서로 간 오해의 골이 점점 깊어져 주민 간 명예훼손, 업무방해로 인한 맞고소전이 빈번해지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온 만큼, '이웃사촌'과 서로 이해하고 소통을 통해 관계를 평온하게 유지한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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