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피지컬:100’, 최강 피지컬 뽑는 ‘근징어게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100’, 헬짱 100인의 대결

넷플리스 오리지널 예능
넷플리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100'의 한 장면. 공식홈페이지 캡처

최강 피지컬이라 자부하는 100인이 벌이는 극강의 서바이벌 게임 예능.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100'에 대한 글로벌 반응이 심상찮다. '오징어게임'을 연상케 해 '근징어게임'이라는 별칭까지 생긴 이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은 뭘까.

◆고대 그리스 올림픽의 서바이벌 버전?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토르소들. 그리스 조각상들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근육들이 장관을 이루는 그 곳으로 한 사람씩 그 토르소의 주인들이 등장한다. 이미 토르소가 보여준 것처럼 출연자들의 몸은 한 마디로 '비현실적'이다. 어깨 하나가 얼굴만 한 출연자도 있고, 허벅지 두께가 허리 두께만큼 두꺼운 출연자도 있다. 근육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처럼 단련된 이들은 물론이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보기만 해도 매혹되는 몸의 소유자들도 등장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100'은 바로 이 출연자들이 한 스튜디오에 등장하는 장면만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도대체 이렇게 몸 좋은 이들이 많았다니.

그런데 그 100명의 인물구성이 만만찮다.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에서부터 선수들조차 감탄하는 최강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스켈레톤 선수 윤성빈, 자기 이름의 기술을 갖고 있는 기계체조 선수 양학선, 씨름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씨름선수 손희찬, 떡 벌어진 어깨가 보는 이를 압도하는 럭비 선수 장성민, 힘 최강자를 뽑는 스트롱맨 우승자 조진형, 19전18승1무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WBA 슈퍼 페더급 세계챔피언 최현미 선수, 야구선수 니퍼트 같은 내로라하는 운동선수들이 가득 채워졌다. 여기에 안다정, 마선호, 김춘리, 이용승, 송아름, 김강민 같은 보디빌더들과, 에이전트H, 홍범석, 짱재, 차현승, 심으뜸 같은 몸 좋기로 유명한 유튜버들이 참여했다.

'피지컬:100'은 바로 강력한 피지컬을 가진 100명의 출연자들을 자신들의 몸을 딴 토르소 옆에 세워놓음으로써 이 프로그램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건 마치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이 당대의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끈 건 아마도 두 가지 요소가 아니었을까. 그건 운동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몸을 보는 것과 그 몸들이 격돌해 가르는 승부를 보는 것이었을 게다. 그런 점에서 '피지컬:100'은 그 시대의 풍경을 최근 예능의 트렌드 중 하나인 서바이벌 장르로 재해석했다.

이것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라는 플랫폼에도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국적, 언어, 문화, 인종 등등을 훌쩍 떠나 특별한 설명 없이도 몸은 전 세계 대중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코드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올림픽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전 세계인들이 4년마다 한 번씩 모여 벌이는 스포츠제전에는 모든 걸 뛰어넘어 하나로 통합시키고 공감시키는 몸이라는 공통 키워드가 있다. 그런 점에서 '피지컬:100'은 글로벌한 소비를 추구하는 OTT 시대에 잘 맞춰진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공개 직후 5일 간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본 TV쇼 부문 7위를 기록했다(플릭스 패트롤). 특히 놀라운 건 문화적 정서적 차이가 장벽으로 존재하곤 하는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까지 고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성을 극대화한 참신한 기획이 불러온 효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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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리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100'의 한 장면. 공식홈페이지 캡처

◆보기 좋은 몸과 능력 좋은 몸의 반전

그렇다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아 놓은 피지컬 장인 100명이 벌이는 대결은 어땠을까.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어떤 퀘스트를 어떤 룰을 가지고 선택하느냐다.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퀘스트로 펼쳐진 '구조물 매달리기'는 '피지컬:100'의 대결이 어떤 색깔을 갖는가를 분명히 드러냈다. 50명씩 조를 나눠 구조물에 매달리고 가장 오래 버티는 이가 승리하는 단순한 퀘스트.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대결 양상은 충분히 보는 맛이 있는 스펙터클을 연출했다. 게다가 이들의 대결이 무슨 운동을 했건 또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대결한다는 것 또한 보여줬다.

물론 퀘스트의 성격에 따라 유리한 인물은 있게 마련이었다. 이를 테면 구조물 매달리기에서 기계체조를 한 양학선 선수나 산악구조대원 김민철 같은 인물은 단연 유리하다. 늘 해왔던 것이 '매달리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몇몇 특화된 인물들을 제외하면, 역시 대결은 붙어봐야 아는 일이었다. 크로스핏 선수 황빛여울은 여성이지만 50명이 대결하는 이 퀘스트에서 악바리 근성으로 3위를 차지했고, 애초 1등은 떼놓은 당상이라 생각했던 양학선을 UDT 교관 김경백이 이기고 1위를 차지하는 이변도 생겨났다.

사전 퀘스트에 이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1대1 데스매치도 그 룰은 단순했다. 3분 동안 공 하나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 다만 참호격투장 같은 경기장과 장애물이 있는 경기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는데, 이것은 출연자들에 따라 기량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감안한 것이었다. 즉 참호격투장을 선택하는 이들은 힘과 힘의 대결을 보여주지만, 장애물 경기장의 경우에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보여주는 순발력의 대결을 보여줬다. 이 대결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출연자들은 존재했다. 모두가 최강의 피지컬이라며 피했던 윤성빈이나 힘은 물론이고 탄력과 순발력까지 갖춘 레슬러 남경진 같은 출연자는 등장부터 압도적이었고 대결도 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센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파워 리프터 하제용과 체대 재학생 임정윤의 대결은 반전의 반전이었다. 힘으로는 히제용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임정윤이 민첩성으로 승부하려 했던 대결이었지만, 결국 힘으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임정윤이 이기는 이변을 낳았던 것. 또 남녀 성대결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화제가 됐다. 남성 격투기 선수 박형근과 여성 보디빌더 춘리의 대결이 그것이었다. 몸싸움 도중 박형근이 춘리의 가슴부위를 무릎으로 제압하는 장면이 논란을 일으켰지만, 춘리가 SNS를 통해 "우승 상금이 3억인데 남녀가 어딨냐"고 쿨하게 입장을 밝힘으로써 문제의 불씨를 조기에 진화했다. 즉 보기 좋은 몸과 실제 대결을 통해 보여지는 능력 좋은 몸은 다를 수 있다는데서 나오는 반전 스토리가 '피지컬:100'의 중요한 재미 포인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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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리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100'의 한 장면. 공식홈페이지 캡처

◆MBC가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

흥미로운 지점은 '피지컬:100'이 다름 아닌 MBC 제작진이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PD수첩',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같은 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장호기 MBC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피지컬:100'이 공개된 1월 24일에 맞춰 박성제 MBC사장이 SNS에 올린 글에 답이 들어 있다. "많은 분들이 지상파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저는 우리 사원들에게 늘 이렇게 얘기한다. MBC는 이제 지상파TV가 아니다.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다."

사실 '피지컬:100' 같은 프로그램은 지상파에서 시도 자체가 쉽지 않다. 지상파라는 플랫폼의 정체성 때문에 소재나 표현 수위 등에 제약을 받는데다가 그만한 제작비도 부담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OTT를 통해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MBC 같은 지상파들은 위기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지컬:100'은 이러한 지상파가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제작사로 변신하려는 그 몸부림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플랫폼은 레거시가 되어가고 있지만 충분한 제작역량과 노하우를 가진 지상파의 새로운 도전으로서, '피지컬:100'이 갖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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