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광섭의 자명고 (自鳴鼓)] 우리의 ‘자유’, 안심해도 되나

지난해 11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 추도식에서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검열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지난해 11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 추도식에서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검열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백지 시위'를 펼치고 있다.
윤광섭 예비역 육군소장
윤광섭 예비역 육군소장

새해 들어 국민들은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충격적인 뉴스를 접해야 했다. 바로 민노총 간첩단 검거 뉴스다. 북한 노동당의 대남 공작은 그리 새삼스럽거나 놀랄 일이 아니지만, 이 사실을 알고도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5년간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남북 관계'라는 것은 평화통일의 큰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종속 변수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라는 것은 평화통일의 큰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종속 변수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북한 노동당이 핵을 흔들어대는 상황 아닌가. 국내 최대 이익단체이자 압력단체라 할 수 있는 민노총의 핵심 간부가 북한에서 대남 공작의 공로로 영웅 칭호를 받은 차관급 인사와 제3국에서 수차 접선하여 공작금으로 의심되는 물건을 주고받았다는 점과, 이들이 2021년 검거된 충북 청주 간첩단이나 현재 조사 중인 창원이나 제주 지하조직들과는 지령 계선을 달리한다는 점 등은, 고(故) 황장엽 노동당비서의 국내 '간첩 5만 명' 증언과 함께 상당수의 지하조직이 더 있다는 방증이다. 철저한 수사로 일망타진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우리의 자유민주체제는 과연 안심해도 되는지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이번 사건은 국가보안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정부 수립 이후 제헌의회를 구성하고자 할 때, 이를 거부하는 남로당에 의해 자행된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 등 공산 폭동을 제지하기 위해 1948년 12월에 제정되었고, 이후 수차 개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민주체제의 기본 질서를 변경하거나 위해하려는 반국가 행위에 대해서는 '방어적 민주주의' 차원에서, 일반 국민의 기본권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법적 장치(소위 '적형사법')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세계적 흐름이다. 우리의 경우, 제정 당시 마르크스·레닌·스탈린주의를 신봉하는 빨치산의 준동에 무법 상태였다는 점과, 6·25전쟁 이후 냉전체제에서 월남이 공산화된 것 등을 고려한다면 국가보안법은 체제 수호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국가보안법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법이라며 폐지론이 곧잘 고개를 든다. 실은 국가보안법을 '반민주 파쇼 악법'이라며 철폐하라는 선동은 북한 노동당의 단골 메뉴이다. 그러면서 정작 북한 형법은 반사회주의 행위에 대해 가혹하고도 엄한 처벌 조항을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 김일성 회고록을 출간하자는 주장이나 대북 사업과 '북한 바로 알기'라는 명분으로 북한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잘 날이 없다.

정부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방첩사령부로 개칭했다. 대공 기능을 정상화하겠다는 뜻이다. 대남 공작이 기승을 부리던 1960년대 중반~1980년대 중반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은 연평균 300여 명으로 간첩'이적행위 관련자들이었고 대다수 국민들과는 무관하였다. 국가보안법에 불편해하는 자는 누구이며 왜인가.

둘째, 가치 전쟁에 대한 이해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일면에는 실용적 관점이 있다. 즉 남북한의 국력 차이를 볼 때 이념 대결은 이미 끝났으며, 북한의 핵은 생존 수단이고 더 이상 대남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는 부(富)를 창출하는 것이 실익이다,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위협만 키운다며 정경분리와 안보의 상대주의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핵 위협을 키우고 비정상적인 남북 관계와 대남 공작의 문만 열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중국군 간부를 접할 기회가 있어, 당 간부학교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당시는 한·중 관계가 군사교류까지 할 정도로 실용주의의 전성기였다. 세간에는 '중국은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다 됐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의당 그 케케묵은 것을 왜 배우겠느냐는 답을 기대했으나 아니었다. 가르친다고 했다.

1949년 이후 중국 현대사라 하면 곧잘 홍(紅·이념)과 전(專·실용)의 권력투쟁을 떠올린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전(專)이란 홍(紅) 속의 전(專)이다.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1981년 제11기 6중전회에서 채택한 '역사결의'(2차)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등소평은 실용(개방)을 표방하면서도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 사상, 일당 독재를 견지하고 중국식 역사 발전 단계를 걷자고 했다. 우리는 '흑묘백묘'에 방점을 뒀지만, 정작 등소평의 실용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중국식으로 사회주의를 만들면 된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100년 도광양회(속을 드러내지 마라)'를 강조한 것이다. 2021년 11월 제19기 6중전회에서 시진핑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신시대를 창립하겠다'(3차 역사결의)고 했다.

지난날의 성과를 인정하고 계승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은 어떠한가. 다원주의를 허용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개방을 거부하고 세습 체제를 다지고 있다. 고갈된 사회주의의 생명 에너지를 채울 돌파구는 한국을 접수하는 것뿐이라는 일념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계급투쟁으로 선동하면서 승부를 걸고 있다. 세습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불변일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실용이나 민주 등 가치의 최종점은 무엇인가. 누구나 '자유'를 곧잘 언급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세우거나 심지어 걸림돌이라 여기기도 한다. '국가주의'라며 국가의 기능을 배제하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가를 과도기적 지배구조로 보고 타도할 대상이라면서도, 행여 이를 놓칠까 '애국심'을 부추기는 데 안간힘을 다하는 자기모순은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의 특성 아닌가. 그들의 지향점에 중대한 오류와 함께 못 미더움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자유는 최종 지향점이며 국가는 이를 지키고 구현할 확실한 행위자이다. 실용이나 민주는 자유를 지향할 때라야 비로소 그 가치가 나온다. 자유야말로 온갖 불평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복지를 실현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궁극의 가치, 자유는 개개인의 '존엄'이 완성되는 자리이자 사랑의 영역이다.

'증오로 얼룩진 사랑'이라면 알기도 얻기도 어렵고, 지키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자유, 과연 안심해도 되는가. 북한 노동당의 지하 공작은 사랑과 증오의 틈새로 스며든다.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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