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년 학교] 작가 김주영 낳은 인재의 산실…청송 진보초교

1912년 공립보통학교 개교 송수식 박사·심후섭 작가 등
많은 분야 훌륭한 동문 배출…졸업생 1만 2천여 명

1941년 청송 진보초등학교 음악 수업 모습. 진보초 제공
1941년 청송 진보초등학교 음악 수업 모습. 진보초 제공
1969년 청송 진보초등학교 입구 모습. 진보초 제공
1969년 청송 진보초등학교 입구 모습. 진보초 제공

퇴계 이황의 본관으로 알려진 경북 청송군 진보면(옛 진성)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이곳에서 '참보배'를 길러내는 곳이 바로 진보초등학교(이하 진보초)이다.

비봉산과 호명천이 둘러싸인 이곳은 1912년 '진보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해 올해 111주년을 맞게 됐다. 현재까지 졸업생 1만 2천여 명을 배출했다.

'정직, 창의, 성실'이라는 교훈 아래 12개 학급 180여 명의 학생이 진보초를 다니고 있다.

진보초는 1909년 9월 광덕사립학교로 설립 인가받은 뒤 학생 수가 늘어남에 따라 1912년 5월 24일 4년제 '진보공립보통학교'로 정식 개교했다. 1921년 11월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부곡리와 시량리, 신촌리까지 통합했다.

당시는 대부분 걸어서 등교했기 때문에 학교와 가까운 지역의 학생들은 7~9세쯤 입학을 할 수 있었지만 다소 거리가 있는 학생들은 1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입학해서 동급생 사이에도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재미있던 것이 고학년 중에서는 기혼자와 어린 학생이 동급생으로 공부하기도 하고 어린 동생이나 자녀를 데리고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진보초는 1938년 4월 1일 '진보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됐고 1941년 3월 '진보국민학교'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 학교 역시 일제 강점 황국신민 교육을 경험했고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교과 학습보다는 전쟁 위한 보조 역할의 교육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해방 후 새로운 학교 교육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홍익인간의 이념'과 '민주주의 민족교육', '국민학교의 교육목표'를 이루기 위한 지역 중심의 새 교육 기관으로서 역할을 새롭게 시작했다.

1970년대는 국적 있는 교육의 신장과 새마을정신의 생활화, 과학기술교육 진흥, 보건 체육교육 등이 주를 이뤘고 1980년대는 국민정신교육 강화 기초교육의 내실, 전인교육의 충실, 교육여건 개선 등을 위한 교육활동을 수행했다.

1990년대 민주시민교육 강화, 도덕성 함양, 기본 학습 능력의 신장, 21세기를 대비하는 교육에 중점을 두며 교육 과정의 다양화와 교육의 전문성 등에 집중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목표로 지식 정보화를 위한 교육 정보화가 강조되면서, 진보초도 정보화 교육 부문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이 결과로 2012년 사이버학습 연구학교 평가 우수교, 2013년 학생 영상제 최우수교와 사이버학습 활용 우수교, 과학교육실적심사 우수교, 2014년 경북사이버학습 활용 우수교에 선정되기도 했다.

2020년부터는 학생주도형-학생생성 교육 과정을 운영하면서 미래역량 신장을 위한 '참보배 미래 HIM(Health-In & Out-Media) 키움 교육'이라는 특색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진보초는 유구한 역사만큼 많은 분야에 동문을 배출했다.

장편소설 '객주'를 쓴 김주영(37회) 작가가 이 학교 출신이다. 그는 대한민국 문학계의 거장이며 수많은 명작을 펴낸 인물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옛 진보제일고에 자신의 이름을 딴 '김주영문학관'에서 직접 생활하며 후배 작가들을 길러내고 있다.

'머루야 다래야'를 펴낸 아동문학가 심후섭(50회) 작가 역시 진보초를 졸업했다.

이밖에 학계에서도 김엽(32)·정형진(52회) 전 안동대 총장, 송수식(37회) 의학박사, 김종길(50회) 고려대 교수 등이다.

1941년 청송 진보초등학교 교실 수업 모습. 진보초 제공
1941년 청송 진보초등학교 교실 수업 모습. 진보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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