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낭만시대의 삼각관계

김나영 소프라노

김나영 소프라노
김나영 소프라노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당신은 나의 기쁨, 아 나의 고통/ 당신은 나의 세상, 나는 그 속에 사네/ 나의 하늘인 당신, 그 속에서 나는 떠다니네/ …당신이 나를 사랑함으로 나를 가치있게 만들고/ 당신의 눈빛이 나를 빛나게 하며/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어올리니…"

독일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연가곡 'Myrthen(미르텐)Op.25'의 1번 '헌정'(Widmung)의 가삿말이다. 프리드리히 리케르트의 시에 슈만이 곡을 붙여 결혼식 전날 아내가 될 사랑하는 클라라에게 선물했다. 그래서 가곡집 1번 제목이 '헌정'이다.

서양음악사에서 낭만주의 시대에는 예술과 철학의 발전에 힘입어 개인의 감정 표현이 더 중요시됐다. 인간의 감정 표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곧 로맨스라 불릴 만큼 화려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로맨스 중에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무명시절 슈만은 당시 뛰어난 피아노 교사였던 프리드리히 비크 집에서 하숙하면서 피아노를 배웠다. 클라라는 비크의 딸이었고 그렇게 둘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슈만은 자신보다 9살이나 어린 소녀 클라라와 사랑에 빠져버렸고 클라라도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둘은 열렬한 사랑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 비크는 아직 음악가로 성장하지 못해 벌이가 없던 슈만이 못마땅했고 딸을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버지 입장에서 속이 타들어갔다. 그러나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둘은 비크의 큰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클라라는 아버지 영향으로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결혼 후 슈만도 아내의 내조로 작곡가로 또 평론가로서도 성공했다. 아이도 여섯이나 낳고 둘은 음악가로서 절정의 시기를 보냈다.

이렇게 해피엔딩이면 좋았으련만 인생은 늘 굴곡이 있듯 이 부부에게 힘든 시기가 찾아온다. 슈만은 작곡가, 지휘자, 평론가 등 여러 직책과 대가족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탓인지 우울증을 앓았고 이어 정신분열증세로 악화됐다. 슈만의 병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지게 되자 여섯 아이 엄마이자 임산부였던 클라라가 피아니스트 활동과 레슨을 하며 육남매를 키웠다.

이 시기 요하네스 브람스가 슈만의 제자로 들어오게 되고 슈만은 무명의 작곡가 브람스의 음악적 재능에 감탄했다. 이들 부부와 브람스는 함께 생활하며 예술적 교감과 우정을 쌓았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한다. 브람스가 유부녀이자 육남매 엄마인 14살 연상 클라라를 흠모하게 된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여지를 주지 않고 명확하게 거절한다. 그럼에도 브람스는 2년이 넘는 기간 마음을 숨기지 않고 사랑을 갈구했다. 그 시기에 슈만의 정신병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클라라는 생계에 가사를 도맡아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여러 차례 고백에도 클라라는 오로지 남편만을 바라보며 수많은 공연장을 누비는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으로 살아갔다. 자신의 가치관을 올곧게 지키며 가정을 일으켜 세운 그녀였다.

서로 너무나 사랑했던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클라라를 사랑해버렸던 브람스. 자칫 삼각관계 스캔들로 될 뻔한 이야기를 클라라 덕분에 일편단심 러브스토리로 지켜질 수 있었고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던 마음들을 온전히 작품에 녹여낸 슈만과 브람스가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그들의 음악이 우리 곁에 살아있다.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적다 보니 낭만시대 로맨스로 마음을 가득 채운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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