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조(가명·82) 씨는 1997년 떠오른 첫 해를 기억하고 있다. 새벽 2시부터 나서서 경주 감포 바닷가까지 온 것이 아까울 정도로,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시시한 일출이었다. 그래도 딸은 사위와 카메라로 사진을 한참 찍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다 뒤에서 순조 씨를 와락 껴 앉고 딸이 말했다.
"엄마, 너무 좋지! 내년에 또 해보러 오자!"
그해 여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딸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게 딸과 함께 바라보는 마지막 해였다면 좀 더 자세히 봐둘걸, 순조 씨는 후회했다. 후회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들 3명 뒷바라지한다고 딸에게는 식당 일만 거들게 한 것도, 딸이 공부를 무척 잘했는데도 일반고 대신 억지로 여상을 보낸 것도, 모든 게 다 후회됐다. 그런데도 번듯하게 자라준 딸에게 '미안하다' 한마디 못 한 것이 가장 후회됐다. 그렇게 순조 씨는 여생을 후회와 고독 속에서 보내고 있다.
◆노름·술에 빠져 살던 남편 위암으로 일찍 세상 떠나… 홀로 4남매 어렵게 키워
순조 씨의 어린 시절 별명은 '큰 머슴'이었다. 그 별명대로 순조 씨는 한평생을 노예처럼 일했다. 초등학교는 1학년 1학기까지만 다니고 더 이상 다닐 수 없었다. 그때쯤 6·25사변이 터졌다. 아버지가 '보국대'라는 곳으로 끌려가 집에는 엄마와 순조 씨, 어린 동생들만 남게 됐다. 순조 씨 또한 아직 어렸지만 5남매 중 맏이였던 터라 엄마를 도와 고된 농사일을 맡아서 했다. 집에 소도 없어 자기 몸집만 한 통에 거름으로 쓸 '똥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다녔다. 언젠가 가뭄이 심해 농사가 아예 안 됐을 땐, 피(볏과의 한해살이풀)나 쑥이라도 뜯어 먹기 위해 하루 종일 산과 들을 쏘다녔다. 그것도 모자라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다.
배움의 즐거움, 학창 시절의 추억, 미래를 향한 꿈…. 아무것도 모른 채 일에 치여 그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19살에 중매로 4살 많은 남편과 결혼해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나왔다. 짜장면 한 그릇이 800원쯤 하던 시절, 부부는 중국집을 운영했다. 남편의 요리 솜씨가 좋아 제법 돈이 잘 벌렸다. 그리고 그 돈은 남편의 술값, 도박 판돈 등으로 모조리 빠져나갔다.
순조 씨가 돈 가져가는 걸 막기라도 하면 남편은 집안 살림을 다 부수곤 했다. 노름에서 돈을 잃은 날엔 순조 씨에게 손찌검도 서슴지 않았다. 어린 자식들은 옷장 안에 숨어 문틈으로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집안을 헤집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봤다.
집안의 폭군으로 군림하던 남편은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직후 중국집도 문을 닫았다. 허망했다. 순조 씨를 죽도록 고생시킨 남편이 눈을 감았다고 해서 고생이 끝난 건 아니었다. 남편 없이 홀로 아들 셋과 딸 하나를 키워야 하는 새로운 고생이 시작될 뿐이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채소 가게, 문구점 등등을 하다 나중에는 직조공장, 철물공장 등 일이 힘들지만 돈은 많이 주는 곳을 찾아다녔다. 자식들을 잘 키우겠다는 집념이 순조 씨의 지친 몸을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웠다.
◆뼈 빠지게 키우고 보증금 빼서 빚까지 갚아줬는데 돌아온 건 '방치'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키워낸 자식들은 각자 가정을 꾸릴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 자식들이 여든을 넘긴 어머니를 보살필 차례였지만 헌신의 대가는 '무관심'이었다.
현재 순조 씨는 혼자 40년 된 투룸에 전세로 살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30만원, 주거급여 13만원, 국민연금 10만원 등 50만원 남짓한 돈이 한 달 소득의 전부. 자식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받는 경제적 지원은 없다. 오히려 사업에 실패한 둘째 아들의 카드빚을 대신 갚기 위해 전셋집 보증금까지 빼느라 한동안 월세살이를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은 순조 씨의 모습을 보다 못한 동생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마련해준 것이었다. 기초수급생활자로 지정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셋째 아들의 소득이 높게 잡혀 그마저도 안 된다.
정작 셋째 아들은 순조 씨에게 1~2년에 20만원정도 보내줄까 말까다. 벽이 낡아 외풍은 심한데 보일러 틀 돈이 없어 순조 씨는 방 안에 텐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텐트 위에 비닐을 씌우고 두꺼운 외투 차림에 모자까지 써 봐도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금전적으로도 부족하지만 지금 순조 씨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의 손길'이다. 순조 씨는 10년 전쯤 혼자 쌀 포대를 들어 올리다 척추뼈 3개가 무너지면서 허리를 크게 다쳤다.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수술비 500만원이 없어 포기해야 했다.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아무도 돈을 안 줬다.
형제들끼리 돈 문제로 사이가 안 좋아 서로 미루다 흐지부지돼버렸다. 그래서 순조 씨는 집 안에서도 실버카를 끌고 다니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 혼자선 옷을 갈아입는 것도, 빨래하는 것도 힘들어 늘 지저분한 차림으로 생활하고 있다. 씻기도 어렵다. 화장실 입구 문턱이 높아 순조 씨에겐 드나드는 것 자체가 힘들고, 그마저도 세면대가 낮게 설치돼 허리를 숙이지 못하기 때문에 부엌 싱크대에서 겨우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 경로당에라도 갈까 싶지만, 외출이 쉽지 않아 단념하고 텐트로 들어가 눕는다. 유일하게 다정했던 딸이 살아있었더라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까. 오늘도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을 하며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순조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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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고아원에서도 폭력에 시달리다가 희망을 품고 대구에 왔으나 불운한 사고로 다리 부상에 손가락 절단된 박무일 씨에게 2,036만 원 전달
부모 없이 삼촌 집에서 자라다 학대당하고, 고아원에서도 집단 괴롭힘에 시달려 대구로 왔으나 연달아 일어난 불운한 사고로 다리 부상에 손가락까지 절단된 박무일(매일신문 1월 31일 자 10면) 씨에게 2천36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주)삼이시스템 10만원 ▷도경희 100만원 ▷김미희 5만원 ▷박옥선 5만원 ▷라선희 3만3천원 ▷이정량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권미경 2만원 ▷신종욱 2만원 ▷이재숙 2만원 ▷김윤희 1만원 ▷남장호 1만원 ▷전희영 1만원 ▷이진기 5천원 ▷이장윤 2천원 ▷'한정혜(예서야힘내' 2만원 ▷'작지만힘을보탭니다' 1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엄마는 다단계 사기 당해 빚만 남기고 가출,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아빠는 최근 간경변증으로 세상 떠나 의지할 곳 없는 세 자매 김주경 양에게 2,962만원 전달
어린 시절 엄마는 다단계 사기를 당한 뒤 빚만 남긴 채 가출하고,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아빠는 최근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나 기초수급비 150만원으로 조부모와 살고 있는 김주경 양네 세 자매(매일신문 2월 7일 자 10면)에게 56개 단체, 279명의 독자가 2천962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탑리더스아카데미 1기 일동 25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세원정공물산 100만원 ▷대구공공관리시설공단 100만원 ▷피치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국서가협회대구지회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주)태린(이정훈) 40만원▷(주)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삼성기공(장태종)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주)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주)서진(김미화)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주)태광아이엔씨(박태진) 10만원 ▷2023 노변중학교 3학년 3반 졸업생 일동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문메딕스(신문상)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신영메딕스(김병) 10만원 ▷신영메딕스(신민) 10만원 ▷신영메딕스(신원상) 10만원 ▷홍천뚝배기(서금희) 10만원 ▷(주)선진건설(류시장)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대흥당약업사(김남화)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보성카써비스(김영수) 5만원 ▷선남의원(김홍구)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주)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국선도풍각수련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부유정(김형준)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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