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교육제도 개혁의 초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주러시아 대사)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주러시아 대사)

윤석열 정부가 교육을 3대 개혁에 포함시킨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문제 해소를 약속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상황은 악화만 되었다. 국가 예산의 20% 가까이를 교육예산에 쓰는 대한민국이 초·중등학생 1인당 쓰는 교육비는 OECD 선진국들을 상회하며 교육시설이나 교사 대 학생 비율은 20년 전에 비해 2~3배 좋아졌다. 그런데도 사교육비 지출 비율은 지난 6년 사이 계속 증가했다. 전체 교육인구당 사교육비 평균 지출이 월 36만7천 원이니 실제로 과외를 받는 사람들은 수백만 원씩도 쓴다는 이야기다. 진학 경쟁이 이루어지는 곳은 학원이지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교사가 숙제를 내면 학원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학부모들의 항의까지 받는 실정이다. 친구를 사귀는 곳도 학원이지 학교가 아니라니 입시 준비만이 아니라 학교의 거의 모든 정상 기능이 학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급 학교들과 대조적으로 대학들의 재정 상황은 선진국의 문턱에도 못 미친다. 하버드대학교의 등록금은 연 6천만 원이 넘지만 실제 운영에는 그보다 더 많은 재단 지원금이 투입된다. 이런 여건 아래서 나라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하는 우리 대학들은 세계 대학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교육열이 높기로 자타가 공인한다.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라면 부모가 못 할 일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나라에서 학교가 제구실을 못해 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에서 허덕이며 각종 비리에 휘말리게 되는 이 거대한 모순, 이 끔찍한 국가적 낭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교육에서도 작동하기 마련인 경쟁과 시장원리를 교육 당국이 무시했고, 많은 정치인들과 국민 대다수도 '학교 평준화'가 마치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보장이 되는 듯한 착각에 오래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평준화되면 '학교에 다닐' 형식적 권리는 보장받지만 각기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할 기회는 없어진다는 것을 무시했던 것이다.

교육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던 예전에는 잘나가던 학교들이 오히려 국가 지원이 넉넉해진 지금 학생들을 학원에 빼앗기는 신세가 된 반면에 학원들은 학부모들의 경쟁적 호응 속에서 엄청난 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이따금씩 법적 단속 대상으로 거론되긴 하지만 교육부의 통제 밖에 있는 과외 지도나 학원들은 학생들의 개별적 수요에 맞는 차별화된 수업을 시킬 수 있다. 반면에 학교에서는 실력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학생들이 한 학급에 묶여서 모두에게 불만스러운 수업이 계속되니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교육비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교육 당국이 했어야 할 일은 공교육을 다변화하여 학생들 개개인의 수요에 맞는 학교를 찾아가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움직였다. 신체적 성장에 장애가 된다 해서 하급 학교 입시를 없애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교육이나 학교 운영에서 경쟁의 원리 자체를 배제하려 함으로써 학교들이 하향평준화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조장한 것이 패착이었다.

세계화 추세 속에서 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라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질 좋은 교육에 대한 구매력은 크게 증가했고 선택 가능성이 전 세계적으로 열려 있는데 국내에서만은 학교 선택권이 전보다도 없어졌다. 전통적 '명문'들이 다 사라지고 공·사립 구분이 없을 정도로 학교들을 통제했으니 공교육 체제의 황폐화는 예견된 것이었다. 사교육은 공교육 영역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수요를 흡수하기 때문에 공교육이 내실화될 때까지는 없어지지 않는다. 현재 사교육 시장과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인적, 물적 자원이 다시 공교육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려면 학교들의 자율권과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넓히는 길밖에 없다. 사회 계층 간 차등 발생 가능성은 장학제도 강화로 풀 수 있고 사교육 시장에서 보다 실질적 기회 차별이 더 커질 이유는 없다.

챗GPT의 등장이 보여주듯이 이제는 교육 당국의 힘만으로는 감지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방면에서 빠른 변화가 일고 있다. 교육부는 국민 전체가 가지고 있는 정보력과 지혜,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의가 공교육 체제로 들어와 공과 사 이중 교육비의 국가적 낭비를 막고 국민의 실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고 학교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지원해 주는 데 교육 개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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