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노인 무임승차, 지방 도시엔 '그림의 떡' 인가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등을 수상한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제목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인 'That is no country for old man'에서 따왔다. 이 문장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이해할 수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노인들이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는 의미다. 영화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의 경험과 지혜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부조리한 사회와 그에 따른 무기력을 담담한 시선으로 전개한다.

과거 주역이었고 한때 영광의 존재였던 어르신들이 난데없이 세대 갈등 논란의 주인공으로 서게 됐다.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기한 '어르신 지하철 무임승차' 논쟁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노(老)-청(靑) 갈등이 첨예하다. 졸지에 어르신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청년세대는 "아예 공짜가 아니라 반값이라도 내야 한다"면서 "65세 넘어 일하시는 분도 많은데, 그렇게 큰 부담인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어르신들은 "너는 안 늙을 거 같냐, 노인 혜택이다. 청년들에게도 주택이며 적금통장 등 퍼주는 거 많지 않으냐"고 응수한다.

반면에 '공짜 노인'이라는 사회적 시선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자식 세대들에 부담이 되기는 싫다"며 "평균수명도 늘어난 만큼 70세부터 무임승차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서울시 노인을 대상으로 '스스로 몇 세부터 노인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평균 '72.6세'라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어르신들의 노령(老齡) 인식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도시철도와 시내버스 통합 무임 지원사업에서 대상 노인 연령을 장기적으로 70세를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버스 무임승차 연령을 오는 6월부터 74세를 시작으로 해마다 1세씩 낮추고, 도시철도는 현 65세에서 매년 1세씩 올리는 방식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하철과 버스요금을 300~400원 인상할 계획을 밝히면서, 운영 적자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무임승차 손실을 중앙정부가 보전해 주면 인상 폭을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정치권도 가세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당은 현재 만 65세 이상으로 돼 있는 무임승차 연령 상향 조정과 중앙정부의 적자 보전을 묶어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야당은 중앙정부가 공익 서비스에 따른 손실을 보전·지원하는 PSO(공익 서비스에 따른 손실보전지원)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지하철의 운영·책임은 시도지사가 주체인 지방 사무인 만큼 지자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국비를 지원할 경우, 그 혜택이 지하철·경전철이 있는 6대 도시에만 집중되는 형평성 문제도 거론한다. 그럼에도 대중교통 무임승차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마당에 시대가 바뀐 만큼 세대 갈등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제도 개선은 불가피하다.

기재부의 입장처럼 지금까진 지하철이 없는 곳에선 대중교통 '무임승차' 수혜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중소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주로 이용하는 버스의 경우 노인 혜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제에 대도시가 아닌 지역 노인들의 교통 이동권 확대 방안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경상북도 지자체도 지역 버스에 대한 어르신 무임승차 정책을 가시화해 주길 바란다. 대구 노인들이 갖는 혜택을 경북에선 못 누리는 차별과 상실감을 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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