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몸의 감각으로 말하는, ‘평화와 냉전 사이‘ 연극 <롱피쓰>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두산아트랩 2023연극 롱피쓰, 두산아트센터제공
두산아트랩 2023연극 롱피쓰, 두산아트센터제공

젊은 연극예술가들의 도발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감상 할 수 있는 '2023두산아트랩' 올해 8개작품 중 포문(砲門)을 연 작품은 그동안 <왕서개 이야기>,<붉은낙엽>,< 무순5년>, <아록과 루시>, <금조이야기>를 통해 전쟁, 인간, 폭력의 시대적 시간들을 현재관점에서 다루어오고 있는 김도영 작가와 배우의 신체(몸) 감각을 무대에서 지속해 탐구해오며 작품의 구도를 도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손청강 연출의 작품<롱피쓰>(Long peace, 두산아트센터)이다. 장기간의 평화와 냉전의 시대에 살아가는 국가와 전쟁, 폭력적인 잔상을 김도영은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욕망으로 파괴되어 가는 시대의 시간으로 우회하고 우화적인 발상으로 다루고 있다.

전쟁뿐인가. 강진(強震)도 도시를 악마처럼 삼키고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4만여명의 참혹한 사상자를 내며 종말이 온 것처럼 도시는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평화로 위장하고 있는 세계는 '국가안보'라는 위장술로 막대한 군사 무기와 핵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시리아 내전은 전쟁의 역사로 되돌리면서 '죽음의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세계평화와 냉전(冷戰)시대 틈으로 미국은 거대한 신자유주의 깃발을 흔들며 킹 달러 몸집으로 세계 경제를 공격하고 있고작가 김도영은 이러한 평화와 냉전, 전쟁의 초침을 우화적으로 배치한다.

장면 배치 방식은 이렇다. 에피소드 '군마'는 평화로 위장하고 있는 냉전의 시간에도 탄약과 보급품을 나르며 전쟁을 준비하고 서커스 원숭이가 되어간다. 군마의 형상은 자본의 방식으로 재생산되며 인간이 되어갈 수 없는 시간을 우화적인 은유로 타격한다. 서커스 단장은 거대한 신자유주의 미국 시장을 떠올리게 되고 카나리아가 되어버린 까마귀는 평화와 냉전의 시대에도 인간(국가)의 위선과 폭력으로 인간이 되어 갈 수 없는 현상들이다. <롱피쓰>는 60분 쇼케이스 이면서도 몸의 언어로 달리며 탄탄하다. 김도영의 이야기는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에도 전쟁과 자본의 폭력으로 인간이 될 수 없는 평화로 위장된 냉전의 시간을 파편적인 에피소드로 배열한다. 연출 손청강은 우화의 표현방식이 동화처럼 되어가는 것을 경계하며 텍스트 언어는 절제되고 배우의 몸(신체) 감각으로 연출의 승부를 띄운다. 두 배우는 작가와 연출의 시선과 의도를 몸의 서사로 그려내며 연극은 샴쌍둥이 몸이 갈라져 인간이 되고 싶은 두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화에서 신화의 인간으로

기형화된 인간 몸은 낯설고 기이한 존재이면서도 신화적 상상을 불러낸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伴人半數)로 형상화되는 '사티로스'와 '미노타우로스'를 그리스인들은 신의 저주를 받은 기형적인 괴물 '테라스(teras)'라 부르고 공포의 대상이었다. 현대에서는 종교, 신화적 관점보다는 기형적인 육신(사람)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인도의 샴쌍둥이동이 '소나'와 '모나' 형제는 몸을 '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이며 정상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샴쌍둥이 사례는 세계적으로 넘친다. 가슴이 붙은 채로 1811년 태국 방콕에서 출생한 '창'과 '잉' 벙커 형제는 알려진 이야기다. 미국 서커스단에서 기괴한 생명체로 소개되면서 19세기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로 성공했고 쇼는 성공을 거두면서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리고 63세가 되던 해 형제는 3시간 차이로 숨을 거두었다. 가슴이 붙은 채로 결혼과 가족, 모두 성공적인 삶이었다. 샴쌍둥이(siamese twins) 형제가 태어날 때 태국을 지배하고 있던 왕조가 시암((Siam) 왕조시대였고' 얼굴은 두 개요, 몸은 하나인 쌍둥이'를 부르는 일반 명사(샴쌍둥이)가 되었다.

템페스트(오태석 연출)에서도 '샴쌍둥이'를 등장시키는데 고대국가(가야국)를 돌아 현재에도 영토전쟁과 약탈, 복수와 폭력,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온전한 인간의 형태로 살아갈 수 없음을 희화화하고 있다. 노다 히테키의 연극< 반신>에서 샴쌍둥이를 라캉의 신화적인 상상계와 실재계로 연결해 삶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연극<롱피쓰>은 전쟁과 냉전의 사이에서 몸과 얼굴이 하나인 샴쌍둥이가 인간이 되고 싶은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비극적으로 태어난 남, 여 아이 몸이 붙어있고 마을 사람들은 괴물로 불렀다. 아이는 한 몸을 둘로 쪼개 까마귀, 뱀, 말, 노루, 멧돼지가 되어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세상은 폭력과 전쟁, 추악한 생존과 죽음의 공포만이 존재하는 냉전으로 위장된 사회이며 거대한 서커스단은 평화로 둔갑한 채 인간을 자본의 노예로 삼키는 위선의 폭력만이 난무하는 국가이다. 인간으로 바뀔 수 없는 <롱피쓰>의 사회를 작가는 '장기간의 평화라고 적고, 냉전이라고 불렀다.'. 폭발물을 장전해 가면을 쓰고 있는 폭력의 시대에 진정한 평화는 마지막 장면처럼 단군신화의 호랑이와 곰이 되어 태초 인간과 인류로 돌아가는 것이다.

두산아트랩 2023연극 롱피쓰, 두산아트센터제공
두산아트랩 2023연극 롱피쓰, 두산아트센터제공

◆평화와 냉전사이의 에피소드

무대는 두툼하고 굵은 하얀 밧줄이 곡선 원형으로 놓여있고 좌우 기둥 벽면은 동굴을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다. 무대 상단위는 장면과 대사를 보충하는 자막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밧줄과 무대공간은 극의 오브제로 움직이며 '아이는 머리가 둘이요 몸이 하나인 샴쌍둥이'는 엄마와 살아가는 동굴에서부터 시작된다. 에피소드는 <프롤로그와 까마귀, 뱀, 카나리아, 말, 노루와 사냥꾼, 군마, 노루의 싸움, 군마와 서커스, 엄마, 멧돼지, 돌아가는 길, 동굴>로 60분 동안 파편적으로 전환되는데 배우(이은지)가 까마귀로 분하면 배우(최경훈)이 서커스단장이 되는 식이다. 인간의 형상을 할 때도 대사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오브제와 몸의 감각으로 표현된다. 대사를 도려내 필요한 말만 골라 썼고 배우의 움직임만으로도 자막은 이들의 대사로 표현된다. 마치 수화사의 동작처럼. 또한 군중의 장면을 간결한 그림자극으로 처리하고 배우의 신체로 에피소드의 고리를 연결해 집중시키는 손청강 연출의 감각이 보였다. 형상의 움직임은 우화적이면서도 감정의 전류는 작가 언어(대사)를 몸으로 숙성시키고 인간으로 승화된다. 그만큼 두 배우가 형태를 만들고 무언으로 교감하는 에피소드는 이들이 여행하는 풍경에 통증을 느끼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의 감각은 소리가 들리고 언어로 확장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온전한 인간이 되고 싶어 한 몸을 가르고 떠나는 이들의 첫 세상 풍경은 <까마귀> 이야기다. 하늘을 날아 까마귀가 되어 여자아이가 만난 것은 서커스 단장이다. 까마귀 털을 뽑고 깃털을 노란색으로 물들여 채찍의 폭력으로 노래하는 카나리아로 만들고 노루가 되어 버린다. 서커스의 풍경과 단장의 모자는 평화와 냉전의 사이에서 세계 안보 질서를 정리하며 달러로 지배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패권주의 권력을 환기하게 하고 평화와 냉전의 사이에도 카나리아가 되어야 하는 인간의 사악한 자본의 욕망을 드러낸다. 남자아이가 뱀이 되어 추위와 죽음을 피하려고 들어간 마구간은 위선으로 위장된 주인으로부터 길들려져 전투기 소리와 총알이 빗발치는 초원을 달리는 군마로 변해간다.

밧줄은 전쟁터의 탄약과 보급품이 되는 오브제로 활용되고 '패전국에 사람은 없다며, 앞으로 전진'을 외치는 군인은 총탄으로 숨이 끊기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군마는 잔혹한 전쟁터에서 죽을 수 없다며 울부짖는다. 배우 최경훈은 <말>과 <군마> 장면에서 탁월한 몸의 감각을 드러내는데 신체로 형상화되는 리듬은 변화되는 감정 상태를 드러내며 극적인 장면으로 전환되고 타닥타닥, 타다닥, 히잉 거리며 죽음의 절망으로 전쟁터를 누벼야 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 ' 장기간의 평화라고 적고 냉전이고 불리는 롱피쓰'는 평화와 냉전의 시간에도 초원을 달리는 전쟁의 시간을 은유하고 있다. <노루와 사냥꾼>은 평화의 이야기이며 <노루와 싸움>은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연속적인 전쟁의 시간이다.

두 눈을 낡은 천으로 감싸고 나타난 맹인 사냥꾼의 화살은 인간의 냄새가 나는 노루의 가슴을 쏠 수 없는 화살이 되고 노루는 자신을 맞추라며 가슴을 드러내는데도 사냥꾼 화살은 인간의 심장을 향하지 않는다. 볼 수 없는 세상은 참혹한 전쟁터가 아니라 내면으로 흐르는 평화이며 인간애다. 노루는 사냥꾼이 붙여준 미루가 되어 인간이 되어가는 평화의 시간은 표범의 사악한 이빨로 숨통이 끊어져 죽음으로 돌아오고 노루는 표범과 삶과 죽음의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무대의 벽면은 표범으로 형상화되며 노루로 분한 배우 이은지는 역동적인 몸의 감각을 드러내며 죽음의 공포와 치열한 전쟁의 사투를 그려낸다. 벽면 기둥을 향해 달려드는 배우의 몸은 인간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평화를 위협하는 거대한 표범을 향해 구르고, 뛰고, 엉키고, 달려들며 핏물로 굳어가며 승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의 시간을 그려내고 있다.

◆몸의 감각, 무대의 언어

<롱피쓰>에서 <노루와 사냥꾼> 장면이 특별했던 것은 배우의 감각적 행위만으로 장면의 생물적인 형태가 구현된다는 것이다. 신체의 감각은 텍스트로 충돌해 생산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현존하는 몸의 감각으로 구현된다는 점이다. 살아있는 감각의 행위는 작가의 텍스트로 해석되어 장면과 대사로 감정이 충돌되는 표현 생산방식보다 배우 몸(신체)로 언어를 창조할 수 있는'퍼포머(performer)' 로서 장면을 투사하고 있다. <군마와 서커스>에서는 전쟁의 탄환이 다리를 관통해 초원을 달릴 수 없는 군마는 서커스를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원숭이가 되어 간다. 단장은 뻰찌를 들고 사악한 폭력으로 말 이빨을 뽑고 바나나를 들고 자본의 노예로 복종하는 원숭이가 되어간다. 평화와 냉전의 시간 사이에 전쟁의 폭력이 흐르고 인간이 될 수 없는 킹달러 신자유주의 시대에 원숭이는 웃음을 파는 도구로 전락하여 인간이 되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노루 미루는 맹인 사냥꾼을 끔찍하게 죽인 멧돼지로 몰리고 돌과 죽창, 화살을 피해 시위자들과 생존의 싸움을 벌이고 육중한 형태로 변해 물리친다. 이념의 갈등과 대립으로 국가와 영토는 전쟁으로 갈라진 남북의 현실을 떠올리게 되고, 영토분쟁으로 화약고가 되어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환기하게 된다.

인간이 되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샴쌍둥이 두아이의 여정으로 마주한 세상은 잔혹한 폭력이 난무하는 평화가 찢겨진 땅이다. 전쟁의 폭격은 죽음으로 심장을 도려내며 총탄으로 생존한 삶도 자본으로 짓눌려지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냉전의 사이로 흐르는 땅이다. 인간이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있는 것은 마지막 장면처럼 호랑이와 곰이 되어 태초의 인간과 인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번 <롱피쓰>가 쇼케이스 임에도 극이 선명한 탄력으로 전달 될수 있었던 몇 가지는 평화와 냉전 사이에 흐르는 현재 시간을 작가의 우화적인 상상으로 그려놓은 세상 풍경들이며, 텍스트의 구현과 배치보다 무대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두 배우 몸의 감각을 텍스트로 확장한 것이다. 몸의 감각을 역동적으로 움직여 낼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역량이면서도 연출과 배우가 텍스트를 체화(體化)한 과정은 연기와 표현의 기술보다는 김도영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충분하게 이해한 작품으로 보였고 <롱피쓰>는 텍스트 그 이상을 무대로 전진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간을 구원할 수있는 진정한 평화의 해법이 마지막 장면처럼 처리되어야 했을까. 뜨거운 의미는 사라지고 허무의 잔상만 남는 만화 같은 풍경이 될 수도 있다. 2023두산아트랩 릴레이 세 번째 작품은 15일부터16일까지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이성직) 가 공연되고 <과태료 부과대상입니다>(손은지), <페이스 타임>(여기에 있다),<아란의 욕조>(이세희), <국산예수>(전웅), <언스코치드>(최호영) 작품으로 이어진다. 두산아트랩은 연극의 형식을 깨고 부시며 한국연극을 성장시키는 예술가들과 작품을 발굴해오면서 두산아트랩 출신의 이름표는 연극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실험의 교실로 기록되고 있다.

두산아트랩 2023연극 롱피쓰, 두산아트센터제공
두산아트랩 2023연극 롱피쓰, 두산아트센터제공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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