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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피플] 안충영 교수 "한국 경제 퍼펙트 스톰 직면…타개책은 하이테크 배양"

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가 매일신문과 인터뷰하는 모습. 안 교수는 14일 금융경제선물연구원 세미나 참석 차 대구를 찾아
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가 매일신문과 인터뷰하는 모습. 안 교수는 14일 금융경제선물연구원 세미나 참석 차 대구를 찾아 "한국경제는 퍼펙트 스톰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정치권, 기업, 대학이 전방위로 협력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경제선물연구원 제공

"한국 경제는 지금 퍼펙트 스톰에 직면했어요. 이를 타개하려면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고 절대 우위 기술력을 지닌 대만의 사례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는 14일 금융경제선물연구원 세미나 참석 차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 단호한 어조로 이 같은 우려를 표했다.

거시 경제 전문가인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지경학적 분화 ▷미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한 원/달러 환율 불안 ▷심각한 고물가 ▷가계 부채 ▷청년 실업 ▷재정 건전성 위협에 무역수지마저 11개월째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안 교수는 "작년 한 해 동안 472억 달러 무역 적자가 났다. 올 들어 1월 한 달 동안 사상 최대인 127억 달러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지금 한국경제는 환율 안정, 물가 상승 억제, 고용 증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마의 삼각관계'에 노정(路程)됐다"면서 "코로나19가 진정 기미를 보이자 IMF는 많은 나라의 성장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지만, 한국의 성장율만큼은 2.0%에서 다시 1.7%로 하향 전망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난관을 뚫고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활로로 '대만 모델'을 주목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를 대만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으로 키워냈다. 그 중심에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 TSMC가 있다. TSMC가 '글로벌 공룡'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대만 정부의 전폭적 지지가 있다는 평가다.

안 교수는 "대만의 기업, 정부, 연구기관이 혼연일체가 되어 지원하는 TSMC와 팹리스(반도체 제조 공정 중 설계와 개발을 전문화한 회사) 중소기업 업체가 선순환 생태계를 이룬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국내 팹리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에 불과하지만 대만은 21%에 이른다"면서 "대만이 이룩한 세계 정상의 파운드리 반도체 제조 능력은 대만의 안보와 경제에 버팀목 역할을 하고, 대외관계 협상력마저 높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한시적으로 최대 25%까지 상향하는 내용의 특례법의 국회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야권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 몰아주기가 명백한 '반도체 특혜법'이라고 지적한 탓"이라면서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그래서 대만은 최근 '반도체 관련 지원법'을 통과시켜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한편 관련 기업 법인세를 절반 이하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전방위 대응 체제가 필요하다. 반도체 업계에 '중국(시안)에서 2년, 대만(가오슝)·미국(텍사스)에서 3년, 경기도(용인·평택)에서 7~8년'이라는 말이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부, 정치권, 기업, 노동계가 시원하게 밀어줘야 한다. 민관학연이 혼연일체가 되어 세계 정상의 하이테크 배양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과 대만이 합류한 칩4동맹에도 한국이 옵저버가 아니라 정식 회원국이 되어 반도체 전 분야에서 미국과 상호 '윈윈'(Win-Win)의 전략적 협업을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대를 졸업한 안 교수는 고향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안 교수는 "대구시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선언하고 비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로 중소기업의 시장 진출이 비교적 쉬운 센서 반도체를 키우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면서 "대기업은 오라고 해서 올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지역에서 자생적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만과 달리 한국은 메모리 분야 반도체에 집중한 나머지 다양한 품목을 설계하고 생산할 중소기업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중소형 비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할 역량을 가진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구가 그런 쪽으로 올인을 해서 대학 커리큘럼과 체계도 확 바꿀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시대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대구에 취업할 기회가 없으면 지방대는 서울에 인력 공급소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가본 길을 가는 과정인 만큼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대구시가 그 씨앗을 뿌리고 그게 태동하도록 기다리고,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가 매일신문과 인터뷰하는 모습. 안 교수는 14일 금융경제선물연구원 세미나 참석 차 대구를 찾아
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가 매일신문과 인터뷰하는 모습. 안 교수는 14일 금융경제선물연구원 세미나 참석 차 대구를 찾아 "한국경제는 퍼펙트 스톰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정치권, 기업, 대학이 전방위로 협력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경제선물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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