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아, 너를 보낸지 20년이 지났구나. 살아있다면 넌 아마 가정 선생님으로 교단에 서 있었을 수도,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가 돼서 내게 반려자를 인사시키러 왔을 수도, 혹은 아이를 돌봐달라고 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너는 내 옆에 없고 그렇게 20년이 흘러가 버렸구나.
2003년 2월 18일, 20년이 지났지만 그 날은 1분1초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전날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서 나왔다가 PC방 가서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한 통 쓰고 왔다"고 했을 때는 "밤이 늦었으니 어서 들어오라"고 채근했었지. 그렇게 들어와 잠든 네 모습을 측은한 마음으로 한참 보다가 그 옆에서 살짝 잠이 들었지.
다음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며 준비하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아, 내 딸이 참 예쁘게 컸구나'라는 생각에 참 마음이 뭉클했단다. 그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내가 "대학 입학 전에 좀 쉬는게 좋지 않겠니"라며 그만두라 했던 걸 넌 "그래도 시작한 거, 한 달은 채워주고 끝내려구요"라며 나갔었지. 그게 너의 마지막 모습이 될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단다.

상임아, 너를 키웠던 그 20년이 너무 행복했었다. 일하는 엄마 대신 동생을 돌봐주면서 속 한 번 안 썩히고 커 왔지. 나 대신 동생 돌보는 거 힘들지 않느냐고, 그래서 가출하고 싶었던 적 없었냐고 물어봤었지. 그 때 너는 "힘들긴 했는데, 가출하고 싶지는 않았어. 내 인생이 소중하니까"라고 답해서 너무 고맙고 마음이 짠했단다. 그렇게 자기 삶에 항상 최선을 다 하던 아이가 네 삶을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가버리다니….
처음에는 왠지 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것만 같아서, 아니 실제로 집으로 들어오는 네 목소리가 귀에 들려서 뛰쳐나간적도 여러번 있었다. 너의 시신을 처음 만졌을 때 불에 타 재처럼 푹 사그러지는 모습을 보며 네게 너무 미안해서 피를 토하듯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를 키운 햇수도 20년인데 너를 보낸 햇수도 딱 20년이 됐어. 그 20년 동안 유족회에서의 활동, 그 이외의 활동들도 이어가며 바쁘게 보내려 했단다. 그러지 않으면 네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 목이 아프도록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돌아서면 너의 빈자리가 또 생각나서, 괜찮은 척하는 내 모습이 속상해서 눈물나기도 한단다. 어쩌다 사람들을 만나려고 카페 같은 곳에 가게 되면 통유리창 너머 하늘을 문득 바라보게 되는데, 왠지 네가 있을 것 같아 멍하니 쳐다보기도 하지.
상임아, 20년동안 엄마가 가장 속상하고 미안했던 건 네가 살아있었으면 누렸을 이 많은 변화들을 네가 못 누린 것이란다. 그 사이에 우리 모녀가 정말 알콩달콩 재미있게 보냈을 잔잔한 일상들이 날아가 버린 게 너무 속상하고 마음아프다.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간다는 곳을 지나가게 되면 네가 이걸 못 누려보고 갔다 싶어 또 속상해진다.
네가 없는 동안 세상은 좋은 모습으로 많이 변했다지만 너를 먼저 보낸 엄마 가슴 속에는 울분과 한만 남은 것 같구나. 너를 키우면서 보낸 그 20년은 참으로 예쁜 추억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걸 떠올리고 나면 또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너를 떠나보낸 게 너무 화가나고 한스러워 가슴이 답답해온다. 이 답답함은 언제쯤 풀릴 수 있을까.
누구보다 예뻤던 내 딸 상임아, 너를 떠나 보낸 지 20년이 지난 지금 항상 너에게 미안한 마음만 있구나. 그립다.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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