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제주 4·3 사건의 진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45년 광복 후 1948년 정부 수립 때까지 해방공간에서 가장 큰 정치적 위협은 좌익의 발호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8년 '제주 4·3 사건'이다. 5·10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계획·주도한 이 반란은 노무현 정부 때 '남로당 제주도당의 자발적이고 단독적인 민중 봉기'로 규정됐다.

반란의 총지휘자는 당시 제주도당 총비서 김달삼(金達三)이다. 노무현 정부의 '4·3 사건' 성격 규정대로라면 김달삼은 남로당 중앙당의 지시 없이 이른바 '독단전행'(獨斷專行)한 것이다. 이는 공산당의 운영 원칙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 공산당 역사를 보면 하부 조직은 상부의 명령과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공통점이 확인된다. 이를 어기는 하부 조직은 '모험주의자' '좌익 소아병자'로 비난받고 숙청된다.

김달삼의 독단전행을 부인하는 자료도 있다. 남로당 세력이 남긴 유일한 문서라는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언론인 출신 북한 연구가 김옥식 씨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1948년 3월 중순경 상부로부터 무장 반격 지령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상부는 어디일까? 당연히 박헌영의 남로당 중앙당이다. 그러나 2003년 발간된 노무현 정부의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기술돼 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런 정사(正史)를 부인하고 4·3 사건이 남로당 중앙당을 넘어 북한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고 했다가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되고 일부 언론의 공격을 받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태 의원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공산당은 중앙당 유일 관리제로 운영된다"며 "무고한 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생길 것이 뻔한 무장 폭동을 김일성이 이끄는 평양 중앙의 지시나 허가 없이 제주도당만의 결정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은 공산당의 작동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의 '보고서'는 과연 진실일까. 아니라는 사람도 많다. 2020년 타계한 제주 출신 원로 작가 현길언도 '보고서'가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사 청산 국정 지표를 실현하기 위한 근거 자료일 뿐 4·3의 역사적인 실상을 밝히는 일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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