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올해 4월까지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법적 시한을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선거구획정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의 '장'이 섰고, 현재까지 14개 선거법 개정안이 제출되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의 일부 의석을 지역구 의석수와 연동해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정당 득표율대로 배분하되,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 배분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의 손해도 보기 싫었던 거대 양당은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같은 위성 정당을 만들어 지역구와 비례대표 선거에 투트랙으로 나섰다. 정당 지지도에 비례해 국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선거법 개정의 취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결과 양당의 정당 지지도는 합쳐서 76.6%였지만 의석 점유율은 95.3%로 1987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비례대표(47석)의 경우 득표율 2.2%당 1석이 주어져야 하지만, 득표율 3%를 넘어야만 배분 자격이 주어지는 봉쇄 조항을 유지했다. 지난 총선의 경우 86만 명이 소수 정당에 투표해도 배분 자격을 얻지 못해 모두 사표가 되는 높은 진입장벽이었다. 300석 중 253석에 해당하는 지역구 선거 결과는 더 심각하다. 유권자가 선호도를 표시할 수 없고 오직 한 명에게만 투표해 최다 득표자 1인만 당선되는 단순 비이양식 소선거구제. 간단히 말해 승자독식의 제도로 인해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버려진 사표는 전체 투표수의 44%에 달했다.
민주공화국은 국가의 의사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지혜가 높은 철학자, 어마한 정보력과 계산력을 자랑하는 AI,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라 해도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이 매번 모여서 토의하고 결정할 수 없기에 자신을 대신할 대표(representation)를 뽑는다. 즉 선거는 한 표라도 많은 쪽이 승리하는 전쟁 같은 것이 아니라 '국민의 축소판'인 의회를 구성해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재차 확인하는 민주공화국의 축제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었을까? 지역구 선거에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없으면 선택은 불가능하다. 아시다시피 선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정당은 후보자를 내지 못한다. 출마자가 있다 해도 1등만 당선되니 과감하게 선택하기는 어렵다. 사표가 될까 전전긍긍하다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차선을 뽑는다. 정당투표도 마찬가지. 의석수가 적은 데다 합쳐서 3%를 못 넘으면 버려질 것이니 또 사표 걱정이다. 소신은 접어둔다.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결정한 선택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다양한 정당의 국회 진출을 저지해 온 선거제도는 정치적 안정을 이유로 정당화되어 왔다. 그런데 큰 정당만 살아남은 지금의 정치는 안정적인가? 승자가 독식하니 거대 양당도 패자가 될까 두렵다. 이념과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부동표를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점차 서로를 닮아간다. 국정 운영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고 약속하기보다는 '저쪽이 되면 큰일'이라며 국민을 겁박한다. 비판 여론에는 '저들보다는 낫다'라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한다.
우리는 선택하지 못했다. 선택은 거대 양당의 공천권을 쥔 자들이 했다. 국회는 사표를 대량으로 양산하고 기득권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를 고수했다. 국민과 닮지 않은 국회, 국민을 싸움 붙이고 세상에 뒤처지는 정치. 언제까지 두고 보아야 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은 이보다 나은 국회를 가질 자격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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