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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ChatGPT가 쏘아올린 공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미국 영화 '아이 로봇'(2004년)에서 형사 스푸너(윌 스미스)가 '써니'라는 이름의 로봇을 살인 혐의로 취조하는 장면이 나온다. "로봇이 교향곡을 쓸 수 있어? 로봇이 캔버스에 멋진 명화를 그릴 수 있냐고?" 써니가 반문한다. "당신은 할 수 있나요?"

창작과 예술이 인간만의 영역이라던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이 상까지 받았다. 사람이 쓴 클래식 곡과 AI가 작곡한 클래식 곡을 사람에게 들려주고 투표를 하게 하는 이벤트도 국내외에서 종종 열린다.

AI가 지적 노동을 대체하리라는 예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ChatGPT'를 보자. 호기심 삼아 이 서비스를 이용해 봤는데 정치, 경제, 복지, 과학, 사상 등 대답에 막힘이 없었다. 물론, 오답도 냈고 자신 없는 답은 두루뭉술 넘어갔다. ChatGPT가 2021년 10월까지 45TB 분량의 텍스트만을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수화'를 주제로 삼행시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예상했던 대로 ChatGPT는 '삼행시'라는 한글 단어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저 세 줄 세 단락으로 구성된 시를 써 줬다. 삼행시에 대해 몇 번을 설명하고 예시를 제시했다. 그러자 ChatGPT가 써 준 삼행시는 다음과 같았다.

'에 피는 꽃이/ 려하게 피어서/ 려하게 빛나네'.

살짝 소름이 돋았다. AI가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구나. ChatGPT는 '강아지를 소재로 한 호러 소설을 써 달라'는 나의 요구도 들어주고 동화도 써 줬다. 물론, 모범 답안 같긴 했다. '의뢰를 정중히 거절하는 메일을 써 달라'고 하니 그럴싸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손만 좀 보면 메일로 보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 스크립트를 써 주는가 하면, 문법적으로 잘못 쓴 영어 문장도 세련되게 다듬어 줬다. 박식하고 성실한 비서 한 명을 옆에 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ChatGPT는 마치 네이버 지식검색에서 대답 잘해 주는 지식인 같다. 포털이 나열한 그 많은 검색 결과를 뒤지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ChatGPT와 같은 대화형 AI 기술은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제품, 홈 오토메이션, 로봇 등과 결합해 엄청난 승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미 텍스트만 입력하면 사진, 음악, 동영상, 코딩을 해 주는 AI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작곡가들이 AI에 '하청'을 맡겨 출력된 음악을 자신의 창작물인 양 발표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일반인이 키워드만 적절히 입력하면 단편 영화 한 편 정도는 너끈히 만들 수 있는 시대도 머지않아 보인다.

혁신적 기술은 산업 지도를 바꾼다. 특히, AI는 전문직군을 위협할 것이다. 의사도 AI와 경쟁해야 할 수 있다. ChatGPT는 미국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했다. 병원 경영진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AI 의사'를 써 볼까 하는 유혹에 직면할 것이다.

ChatGPT를 앞세운 MS를 비롯해 구글,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이 AI 대전에 참전했다. 기술은 세상을 바꾼다. AI가 '특이점'에 가까운 기능을 하기 시작한 지금, 누구는 크게 성공하겠지만 누구는 고난의 절벽으로 내몰릴 것이다.

ChatGPT가 공을 쏘아 올렸다. 많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지금은 눈·귀를 열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대한민국, 그리고 대구경북은 AI 시대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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