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을 끼고 고즈넉한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있는 건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근대 양식을 본뜬 듯한 건물은 붉은 벽돌과 푸른 빛의 창틀, 원뿔형 첨탑이 인상적이다.
가림막 너머로 슬쩍 보이는 난간에는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자두꽃) 문양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1907년 즉위한 건물, 돈덕전(惇德殿)의 재건 현장이다.
지난 16일 오후 찾은 돈덕전은 외부 공사를 끝낸 상태였다.
문화재청은 2018년 설계를 시작해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보존처리, 기반 조성 작업 등을 거쳐 작년 11월 공사를 완료했다. 현재는 주변 조경 정비와 실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낸 돈덕전은 과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했다.
서양식 연회장으로 쓰고자 1901년을 전후해 지은 돈덕전은 외관을 유럽풍으로 지었고, 내부 접견실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커튼, 벽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 2명이 담을 넘어 들어와 구경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는 기사도 남아있다.
송명석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주무관은 "근대 건축물을 이렇게 재건한 사례를 처음일 것"이라며 "흑백 사진 등 남아있는 자료를 토대로 건물 모습을 재현하고 그 의미를 살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흑백 사진 속 건물을 화려한 색감으로 되살린 점은 주목할 만하다.
복원을 앞두고 2016년 펴낸 '덕수궁 돈덕전 복원 조사연구' 보고서에 공개된 건물 투시도에서는 창틀이나 난간이 회색으로 돼 있으나, 최종적으로는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건물 외관의 붉은색 벽돌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색상이다.
송 주무관은 "전문가들과 여러 차례 자문회의를 한 결과, 덕수궁 내 다른 건물인 정관헌(靜觀軒) 사례를 참고했다. 시간이 지난 뒤 지붕의 동판 색깔과도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복원'이라는 말 대신 '재건'이라는 말이 조금은 어색하죠? 원형 그대로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 남아있는 사진과 기록을 바탕으로 돈덕전을 새로이 만들어나간 겁니다.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죠."
1930년대에 이미 건물이 헐린 것으로 전하는 데다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보니 작업 과정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제작되는 벽돌은 크기가 크지 않아 발굴 조사에서 나온 유물을 토대로 가로 평균 23㎝, 세로 11㎝ 크기로 새로 제작해야 했다. 쌓는 방식 역시 사진 속 모습 그대로 따랐다.
송 주무관은 "건물 입구에 있는 바닥 타일도 별도로 제작했다"며 "시굴 현장에서 출토된 타일과 덕수궁 내 다른 건축물 타일을 비교하며 색감을 조정하느라 전문가 회의만 3번 정도 했다"고 떠올렸다.
과거 돈덕전 앞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회화나무 또한 3∼4m 정도 위치를 옮겼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건물과 가까워진 탓에 생육 환경에 영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초 공사는 2021년께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등으로 다소 늦춰졌다.
송 주무관은 "설계 당시 2층 건물로 계획했으나,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3층으로 증축하고 덕수궁관리소 사무실 등을 준비하느라 완공 시점이 다소 늦춰졌다"고 설명했다.
돈덕전은 올해 5월 현판식을 연 뒤, 9월 공식 개관할 예정이다.
1·2층 공간은 과거 고종과 순종 등이 사용했던 폐현실(陛見室·황제나 황후를 만나는 공간), 외교실 등을 유지하되 대한제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대한제국 관련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19세기 느낌의 도서관도 마련된다. 특히 1층 복도 바닥에는 유리를 설치해 돈덕전 발굴 당시 모습과 유구를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전시 담당자인 박상규 덕수궁관리소 학예연구사는 "120년 전 외교의 장(場)이었던 돈덕전을 중심으로 자주적 근대화와 중립국을 향한 노력, 대한제국의 못다 이룬 꿈을 재조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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