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자주 하는 말 중에 "적당히 해라!", "적당히 먹어라! 체할라!"이런 말을 한다. 부모님에게나 아니면 친구나 동료에게 하는 말들이다. 어울리거나 정도에 알맞은 것이 적당한 의미다.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는 어느 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청춘을 이야기하면 다르다. 열정과 패기가 앞서는 젊은이들에겐 적당함이 오히려 마이너스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진취적이고 승부사적인 도전이 필요할 땐 적당함보다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둘 다 경험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 두 번은 족할지 모르나 반복은 안 된다. 그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와 생채기를 내게 된다. 그 욕망으로 인해 상처나 아픔이 되어 가슴에 남을 수도 있다. 그만큼 적당하게 한다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마음만 바꾸면 쉬울 수도 있다. 이것이 적당함의 묘미다.
살면서 적당히는 쉽지 않다. 샤워기의 온도나, 밥을 할 때나, 술을 마시거나, 운동을 하거나, 물건을 살 때도 쉽지 않다. 무엇이 적당한지, 언제가 적당한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아가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관계만큼은 적당히 가 잘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심스럽게 적당함을 지켜야 하는데 조절이 안 될 때가 많다.
특히 부모라면 자식들 모아놓고 살면서 보탬이 되는 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지나치면 잔소리가 되거나, 꼰대 소리를 듣거나, 하나마나한 이야기 되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마련이다.
모든 일에 있어 적당한 선에서 멈추거나 할 때 그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은 현명하거나 지혜롭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은 사고로 이어지거나 탈이 나게 된다. 적당함의 절제는 사랑을 품위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랑을 오래가게 만든다.
적당함에 내포되어 있는 적절함도 그 상황에, 그 시간에, 그 사람에게 나의 태도는 나의 말투는 기준에 맞았는가 하는 것이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적절하게 처신을 잘 하는 사람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적절함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마음을 내려놓으면 해결될 수 있다.
적절하다는 것은 균형 때문에 중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균형이 있다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많지도 적지도 않아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적절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활발하고 부드러워 모든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래서 적절한 것은 안정적인 바탕에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적절함과 적당함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 뜻이 왜곡되어 쓰이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적당히 하라'고 하는 것을 '대충 하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적당이란 것은 중용의 뜻과 같다. 치우침이나 알맞거나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적당한 자신감, 적당한 스트레스, 적당한 기대, 적당한 좌절감, 적당한 수면, 적당한 슬픔,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고, 이런 적당함이라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금상첨화다. 적당함이라는 것도 적적할 때 이뤄져야 적당함의 미학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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