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가업상속공제'가 있다. 10년 이상 된 매출액 4천억 원 제조업을 물려주면 상속세를 200억~500억 원 깎아준다. 여기에는 의무가 따른다. 7년 이상 제조업에 종사해야 한다. 작년 말 법인세 인하로 시끄러운 와중에 '가업상속공제'가 크게 확대됐다. 이제는 매출액 5천억 원인 제조업을 물려줘도 감면(減免)을 받는다. 감면액도 300억~600억 원으로 커졌다. 제조업을 서비스업으로 바꾸고 5년만 경영하면 된다. 예를 들어 보겠다. 내가 20년 동안 철강 기업을 경영했다. 매출액은 5천억 원이다. 이 기업을 자식(子息)에게 물려주면 세금이 400억 원 깎인다. 철강 회사를 물려받은 자식이 호텔로 바꿔서 5년 운영한 후 팔면, 결과적으로 호텔을 운영하는 대가로 매년 80억 원을 받는다.
통계를 보자. 주식시장에 상장되거나 외부 감사를 받는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은 전국에 1만 개가 있다. 이 중에서 95%가 매출액 1천억 원 미만, 99%는 3천억 원 미만이다. 대구경북도 비슷하다. 1천 개 기업 중에서 매출액 1천억 원 미만이 96%, 3천억 원 미만은 99.8%이다. '가업상속공제' 대상은 매출액 1천억 원이면 충분하다. 3천억 원으로 정해도 거의 모든 기업이 포함된다. 5천억 원으로 확대한 것은 명백한 '부자 감세'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 국민은 평등 지향적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 그런데도 상속세 완화에 대한 여론이 나쁘지 않다.
재계(財界)를 대변하는 단체들이 상속세 부작용을 과장했다. 과도한 상속세로 제조업이 사라지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서민(庶民)이 피해를 입는다는 '낙수효과'(trinkle-down effect)가 다시 가동됐다. 보수 언론은 상속세를 내느라 가업을 접는 사례를 보도했고, 다른 한편으로 대중에게 "미래에 나도 상속세를 낼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내가 부자가 되면 상속세를 내야 하니 상속세 완화는 내게 이익이라는 착각 말이다. 2022년 국세(國稅) 총액은 334조 원이다. 이 중에서 상속·증여세는 4.5%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 재산이 상속된다. 상속될 때마다 상속세만큼 재산이 줄어든다. 세율이 낮아도 몇 차례 상속이 이루어지면 기업이 작아진다. 부자들이 상속세에 민감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 가지 방법은 있다. 기업을 1명에게 물려주면 된다. 어떤 사람이 1조 원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상속세율은 10%이다. 이 사람에게는 자식 3명과 손주 5명이 있다. 이 기업이 자식 1명에게 상속되고, 다시 손주 1명에게 상속되면 8천100억 원 기업 1곳이 남는다. 반면 이 기업을 아들 3명이 상속하고, 다시 손주 5명이 상속하면 1천600억 원 기업 5곳이 남는다. 몰아주지 않으면 기업이 쪼그라든다.
정부에 상속세는 매력적이다. 납세자가 적어서 정치적 부담이 없다. 그럼에도 잊을 만하면 상속세 폐지 주장이 나온다. 부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상속세는 자의적(恣意的)이다. 돈을 여행이나 학비에 쓰면 세금을 안 내지만 자식에게 물려주면 세금을 내야 한다. 물론 상속세를 거둬야 하는 이유가 있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은 자식의 소득이다. 소득이 생기면 세금을 거두는 것이 조세 원칙이다. 작년에 국세청은 근로소득세 57조 원을 징수했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부가 대물림된다. 대물림된 부는 정치적 힘으로 연결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상속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단이다.
대구시가 지하철 무임승차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올리고, 버스 무임승차는 75세부터 시작해서 70세까지 낮춘다. 지하철 적자를 완화하려는 꼼수이다. 건강 상태가 좋아져서 65세는 노인이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노인은 73세부터라는 얘기가 들린다. 듣기 민망하다. 노인들의 경제 상태가 좋아져서 무임승차를 축소해도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적당히 하자. 우리나라 노인 빈곤은 심각하다. 솔직하게 얘기하자. 돈이 없어서 노인복지를 삭감한다고. 이렇게 돈이 없는데 정부는 상속세를 완화했다. 유감(遺憾)이다. 가난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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