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미궁의 설계자'… 잔인한 역사의 미궁, 고문과 폭력의 역사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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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궁의 설계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신화 속 건축가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왕 미노스로 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迷宮)을 설계하게 하고 테세우스는 미로에서 미노타우로스를 비틀어 죽여버렸다.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미궁의 설계자> (김민정 작, 안경모 연출, 연극집단 반>는 국가권력과 시대의 건축가가 빠져나올 수 없는 남영동 대공분실 미궁의 설계자를 다루고 있다. 역사와 죽음, 사건과 기록의 이야기다. 이번 작품은 김지은 대표체제로 전환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까지 신작을 들고 무대로 달리고 있는 연극집단 반과 <해무>, <길삼봉뎐>,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등으로 호흡을 이어오고 있는 안경모 연출,김민정 작가가 남영동 대공분실 미궁의 설계자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극은 김수근의 도면을 따라 시대와 역사를 한 공간으로 배치한다. 미궁의 설계 도면이 향하는 지점은 유신정권과 80년대 폭력의 시대를 거치며 현재 시간으로 중첩된다. 과거와 현재,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며 설계 도면이 채워지는 시간은 국가보안법 깃발로 빨갱이 덫을 씌워 죽음의 공간이 되어버린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미궁의 '그 사람'을 소환하며 붉은 타일 바닥으로 사라져간 고문과 핏물의 역사를 현재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권력과 건축 사이 '심문은 예술'

남영동 대공분실은 올림픽 주경기장, 세운상가, 경동교회, 국립 부여박물관, 공간 사옥, 아르코예술극장 등 국가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남긴 고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한 고문 밀실의 작품이면서도 도면에는 '김'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 건축양식은 공간 사옥 건축양식과 닮아있고 밀폐된 통로의 철제 나선형 계단, 좁은 돌출형 직사각형 창틀구조, 휴먼스케일 건축방식과 검정 벽돌의 진실은 한 사람 흔적을 말하고 있다. 육중한 철문을 통과한 뒤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온 5층 복도는 15개의 조사실에서 사라져가는 폭력과 죽음의 소리로 가득했을 것이다. 욕조에 갇힌 채로 물로 숨통을 막고, 전기로 살갗을 태우며 조작의 역사를 생산한 남영동 대공분실 입구에는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김치열이 책임자로 기록되어 있다. 1976년 완공된 건물은 5층으로 설계되어 1980년대 초반 7층으로 증축되었다. '해양연구소'로 위장한 건물에서 당시 민주화 청년연합(민청년) 의장이었던 고 김근태 의원은 '독가스 대신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아우슈비츠'를 떠올렸고 박종철 열사(1987)는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져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박종철 사망 사건 7개월 전 미궁의 설계자는 간암으로 타계하면서 그의 건축물들은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상징하고 있다. '심문은 예술'이라고 말한 이근안은 한때 목사가 되었다.

김민정 작가가 미궁의 설계도를 그리고 안경모 연출이 무대로 건축한 연극 <미궁의 설계자>는 남영동 대공분실과 80년대 군부정권의 민낯을 그리고 있는 영화, 드라마와는 초점의 결이 다르고 미궁의 설계 도면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는 점이 흥미로운 소재다. 극의 구조는 이렇다. 미궁의 건축 도면을 설계한 '그 사람' 도면 위로 남영동 대공분실이 완공되기 이전 1975년 김치열과 김수근의 설계를 조력(조수)한 극 중 인물 양신호(이종무 분)을 중심으로 유신 시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事犯)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미노로스 미궁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설계되어 가는 시간이 그려진다. 극 중 인물 대학생 송경수(김시유 분)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향하던 박종철 열사를 떠올리며 잔혹한 고문의 80년대를 소환한다. 다큐 감독 권나은 (이가을 분)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취재 하기위해 찾아가고 기록의 공간을 현재 시점에서 해설하고 있는 윤미숙(전국향 분)과 70, 80년대와 현재 시간으로 교차시키며 핏자국으로 진실이 실종된 채 설계도의 미궁을 떠도는 시간을 마주하게 한다. 관객은 공연이 끝난 뒤 아르코예술극장 로비를 빠져나와 분장실과 극장 로비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타고 이동하는 기이한 체험도 하게 되는데, 쇳덩이가 퉁퉁 울려대는 발소리가 80년대처럼 들린다.

◆시대와 죽음의 미로 <미궁의 설계자> 무대도면

안경모 연출이 김민정 작가의 미궁의 설계 도면을 들고 무대로 배치한 공간은 한 장소에서 중심적인 세 개의 다른 시간(역사, 기록, 죽음, 사건)과 시대가 장면으로 교직(交織)되고 지워지면서도 향하는 지점은 미궁의 설계 도면이 작성되던 시간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공간이다. 설계도면의 디테일한 폭력과 은폐, 죽음의 구조는 국가권력으로 청탁받고 설계 해야 하는 한 인간의 고뇌와 시간 들이 연속되어 지면서 도면 위로 80년대 죽음으로 이어지고 핏물을 지워낼 수 없는 현재 시간을 응시하고 있다. <미궁의 설계자> 무대 도면은 이렇다. 가운데는 설계도 탁자가 놓여 있다. 뒤로는 탱크 소리로 들렸던 육중한 철문을 연상하게 하는 문이 좌우 이동식으로 움직여지며 과거 시간과 현재를 잇는 길이 된다. 무대와 장면 사이로 70, 80년대의 권력과 고문의 폭력으로 사라진 망자(亡者)이거나 현재의 시선들이 미궁의 역사를 바라보며 설계 도면을 지나 80년대와 현재의 시간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응시하고 있다.

좌측은 5층 취조실 철재 문이 겹으로 쌓여있는 형태로 되어 있고 연출은 남영동 대공분실 무대 도면 위로 여러 시간의 시점이 연속적으로 흘러가게 한다. 시간과 역사가 한 지점으로 고여지는 특정 장면에서는 트레이싱 용지처럼 반투명 색을 띠고 있는 무대 스크린으로 확장되어 남영동 대공분실 역사 공간을 투영하고 있다. 나선형 계단, 검은 벽돌, 감시자들의 여러 눈처럼 보이는 좁은 직사각 창틀, 설계도면, 509호의 붉은 타일과 욕조, 철제 책상과 좁은 간의 침대를 투사한다. 마치 인터넷을 열고 죽음과 사건의 공간을 아카이브로 기록된 현장을 생생하게 마주하는 것처럼 말이다. 연출은 작가의 설계 도면에서 한 발 더 들어간다. 희곡으로 등장하지 않은 '응시자들'을 배치해 1975년 도면이 그려지던 시점과 80년대의 죽음, 현재 시간으로 기록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응시한다. 미궁의 설계 도면의 진실을 바라보는 죽음의 시선들이면서도 진실을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이다. 연출은 대학생의 고문 장면과 죽음의 구조가 만들어지는 설계 도면을 카메라로 투사해 죽음과 사건의 현장을 현재시선으로 확장하고 극적인 이미지로 무대를 극대화하고 있다. 경수의 고문 장면과 양신호가 설계 도면에 써놓은 미노스 '미궁'의 낱말을 카메라로 확대하는 식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궁의 설계 도면은 진실을 거부할 수 없는 디테일한 죽음의 공간구조로 미로처럼 설계도면에 박혀 섬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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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도면의 한 사람을 지목하는 70, 80년대와 오늘

극은 대학생 송경수를 통해 1986년 사건과 죽음의 공간, 건축설계 조력자 양신호을 통해서 1975년의 유신시대의 진실을 지워낼 수 없는 시간의 공간이 된다. 해설자 윤미숙(전국향 분)과 다큐감독(이가을 분)의 남영동 대공분실은 기록의 공간이다. 1975, 1986, 2020년도의 1월 23일 즈음으로 설정된 시간 배경은 한 장소(공간)에서 여러 개 사건이 현재로 교차하며 시작된다. 특정 요일을 향하고 있는 설정은 한 장소로 역사의 시간을 묶으려는 작가의 의도된 설정이다. 연출은 작가가 설계한 특정한 세 개의 시간이 교차 되는 시간을 묶거나 설정을 버리지 않고 동시적으로 시간이 유기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장면과 무대를 배치하고 있다.

극 중 인물들은 시간과 장소, 사건의 장면들과 변화되는 내면 상태를 설명하면서 인물로 분하고 있다. 송경수, 양신호의 기억의 시간은 현재로 흐르는 것처럼 극 중 인물들은 시간을 뚫고 움직임과 분위기로 장면을 형태화 시키며 프롤로그 이미지를 형성한다. 윤미숙과 다큐감독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돌아보며 시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그려지고 한쪽 공간으로 양신호, 허일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가는 시간이 비쳐진다. 미궁의 설계구조가 선명해질수록 한쪽에서는 대공분실로 끌려와 취조받고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르는 송경수의 시간이 연속되어 진다.허일규가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과 월북한 양신호 삼촌 얘기며, '바닥에는 타일을 까는 겁니다. 목욕탕처럼. 그래야 피가 나도 닦기가 편할 거 아니요?(중략) 한 명씩 간첩 새끼들을 가두는 겁니다. 그런 놈들을 방마다 하나씩 넣고서 피고름을 짜내는 기지요. 자, 어서 그려 보시오. 빨간 타일이 깔린 방을.'허일규가 설계도면을 권력의 위협으로 완성 시키려는 극 중 장면에서는 유신시대를 환기하면서도 권력의 등을 타고 성공하려는 건축가의 이면(裏面)도 보인다.

설계조력자(조수) 양신호는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하는 빨갱이를 잡는 검은 벽돌 건물의 설계도와 인간이 품속에서 예술가의 순수를 고뇌하는 장면들에서는 영혼과 자아가 균열되고 파괴되어가는 내면의 모습들을 '김'(수근)의 어린 시절로 형상화해 극 중 인물 아이(전민재 분)의 시간을 교차시킨다. 아이는 권력으로부터 예술가로서 순수한 욕망이 파괴되어간다. 검은 벽돌을 쌓고 놀았던 아이는 설계 도면의 윤곽(輪廓)이 드러날 때쯤 대공분실 외벽의 벽돌을 쌓고 물고문과 폭력, 조작과 은폐로 죽음의 방이 되어버린 붉은 타일에 박혀 있는 욕조 공간을 테이프로 죽음의 구역을 그리며 그 앞으로 검정 벽돌을 세운다. 아이는 양신호 자아의 분신이자 김수근의 어린 시절로 동일화된다. 명동 거리에서 여자친구 윤정이를 만나기로 한 86년 그날의 대학생 송경수는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차디찬 죽음으로 붉은 타일 바닥 욕조에서 허일규가 원하던 피고름이 되어 사라져 간다. 마지막 장면은 양신호가 자신이 설계한 욕조에 몸을 구겨 놓고 아이는 검은 벽돌을 쌓으며 무너져 가는 거장의 흐느끼는 절규의 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다.

◆아이의 존재, 인물의 설정방식

한 장소에 여러 개의 사건과 죽음, 기록, 역사의 시간 들을 플롯으로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아이의 존재, 다큐멘터리감독, 윤미숙, 양신호의 가상 인물들을 설정해 70, 80년대와 현재 시간을 연결하는 작가의 구성 감각으로 연극 <미궁의 설계자>을 90분 동안 긴장감 있게 쫓아갈 수 있었으면서도 응시자들의 설정과 송경수의 죽음, 양신호의 속죄를 선명한 미장센으로 그려낸 연출 감각도 무대에서 도드라졌다. 작가는 미궁의 설계도면 구조를 배치한 인물을 김수근으로 겨냥하지 않고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 '김'의 어린 시절로 형상화되는 아이를 설정해 양신호의 설계 도면을 동일한 인물로 바라보는 작가적 설정은 알려진 역사와 시대의 시간이 다큐로 흐를 수 있는 미궁의 설계자를 다층적인 연극적인 장치로 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 다른 건물의 나선형 계단은 예술적이고, 이 건물의 나선형 계단은 은폐를 위한 장치라니 너무 편파적인데요. 공간 사옥에도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요. 그 계단을 보고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큐 감독은"(중략) 전 어느 순간에도 고통의 비명이 넘쳐나는 고문실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설계자는 여기서 사람이 죽거나 고통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는 정말 미노스 왕의 청탁을 받아 미궁을 설계하고 권력과 부를 추구한 악마였을까?" 다큐 감독은 남영동 대공분실 공간의 역사를 취재하던 작가의 객관적인 시선을 투영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남영동 대공분실 해설자 극중인물 윤미숙의 존재이다. 미궁의 설계도가 완성되어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윤미숙이 86년도 그날의 대학생 송경수와 명동 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던 '윤정이'로 그려지면서 심리적인 반전을 주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행된 조작과 은폐, 폭력과 고문으로 죽어간 그날 악몽의 기억은 윤정이도 죽음의 트라우마를 씻어낼 수 없는 80년대의 피해자이면서도 미궁의 설계 도면으로 사라져간 죽음과 사건의 기록들이 선명한 진실로 기록되어야 할 시선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앙상블과 배우들은 움직임으로 응시하는 시대의 이미지를 만들고 장면으로 역사를 토해내며 굵은 장면들로 형상화 했다. 특히 송경수로 분한 김시유는 영화적인 미소년의 이미지만 덜어내면 윤정이와의 만남부터 고문과 죽음까지 86년도 그날의 시간으로 사라져간 인물들을 통증으로 감각을 응집하면서도 고문의 전류로 사라져간 박종철 열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시대와 삶을 배우의 감각으로 고통의 내면을 숙성시키려는 배우의 태도와 감각이 보였다. 미궁의 설계자 '그 사람' 양신호로 분한 이종무는 마지막 욕조 장면에서 몸을 구겨 넣고 아이의 동심으로 인간의 건축을 완성하고 싶어 했던 삶의 오류를 욕조의 물로 속죄하고 지워내고 싶어 하는 절규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경북 의성 출신의 손성호는 공교롭게도 설계를 지휘한 대구 출신의 김치열 당시 내무부 장관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투박한 말투와 웃음 사이로 유신시대 권력의 공무원으로 개성있는 연기로 살려냈으며 윤미숙으로 분한 배우 전국향은 송경수를 지워 낼 수 없는 역사의 시간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쉬웠던 점은 여러 시간의 시선들이 한 공간으로 겹치고 이미지로 투사되는 장면들이 다소 산만함으로 극이 70, 80년대와 현재 시간의 통증들이 스쳐 지나가듯 온전한 형태가 안 되었다는 점은<미궁의 설계자> 아쉬운 장면들이다. 아이의 설정으로 양신호와 '그' 사람을 동일시하는 시선과 마지막 장면의 아이와 양신호의 붉은 타일과 욕조는 극을 두텁게 채워내면서도 설계 도면 사이로 고뇌하는 장면에서 아이의 공간배치에 거리감을 주고 양신호와 김의 사이에서 객관적이면도 실체적 진실의 시선을 담아내려는 의도가 보였다. 양신호가 갈등하고 변화되는 내면의 시간과 아이가 검정 벽돌을 세우는 장면에서는 무너지는 인물의 내면과 아이의 설정이 거리감이 보였다. 한 장면 정도 두 인물을 한 공간에서 마주하게 하는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작가와 연출의 시선이 양보 없이 무대로 겹치며 연극 <미궁의 설계자>는 마지막 공연까지 매진을 달리고 있다. 안경모 연출과 김민정 작가의 조합이 작품의 신뢰를 깨지 않는다. 26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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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궁의 설계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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