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만찢남'이라고 하면 '만화를 찢고 튀어나온 남자'라는 의미로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진 인물을 지칭한다. 하지만 티빙 오리지널 예능 '만찢남'은 그 의미가 정반대다. 만화 그리던 웹툰 작가들이 만화 속 세상으로 들어갔다는 세계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익숙한 몰카로 시작했지만…
티빙 오리지널 예능 '만찢남'의 시작은 어딘가 레전드 예능 '무한도전'을 떠올리게 한다. 이말년, 주호민, 기안84에게 해외여행을 콘셉트로 하는 프로그램을 찍는다고 하고는 무인도로 데려가는 몰래카메라 설정이 그렇다. 이들을 속이기 위해 제작진은 굳이 세 사람을 태국까지 보내주고 다음 여행지로 몰타를 간다고 속여 무인도로 데려간다. 그 무인도는 다름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의 배경이 됐던 '지옥도'다. 지옥도라고 불렸지만 달달한 연애 분위기가 후끈했던 '솔로지옥'과 달리 '만찢남'의 그 섬은 진짜 지옥도 같다. 영문을 모르고 몰타 가는 줄 알고 갖고 온 트렁크 하나씩 챙겨 떨어진 이 섬에서 이들은 이제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한도전'에서 익숙한 몰래카메라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만찢남'은 여기에 신박한 차별성을 심어뒀다. 그 곳에서 이들이 마주한 황재석 PD가 이 섬에 대해 "이 공간은 누군가가 그린 만화 속"이라고 말하면서 그 차별화된 세계관이 소개됐다. 즉 몰래카메라 설정과 무인도라는 공간은 너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그것도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익숙한 것이지만, 그 공간을 굳이 가져온 이유가 '현실의 만화화'를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무인도가 갖고 있는 텅 빈 공간은 마치 아직 만화가 그려지지 않은 스케치북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제 그 안에서 툭탁대며 살아가는 이말년, 주호민, 기안84의 생존기는 이 만화의 스토리가 될 거라는 것이다. "그 동안 작가님들 만화만 그리고만 사셨잖아요. 오늘부터는 작가님들이 이 만화 속의 주인공이 되셔서..." 그 말에 기안84는 파안대소를 터트린다.
마치 무인도에서 치르는 실사판 롤플레잉 게임처럼 이들은 미션을 통해 그 안에서 쓸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걸로 텐트를 구입하거나 먹거리를 사서 요리를 해먹는 등 조금씩 '문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처음 제작진이 이들에게 제시하는 미션이 흥미롭다. 그건 자신들이 무인도에 올 줄 모르고 만일 누군가를 무인도에 보낸다면 시키고 싶은 것들을 그린 그림대로 자신들이 똑같이 연출해내는 것이다. 불 피우기, 모래 덮고 잠자기, 사냥해서 야생동물 잡아먹기, 아담처럼 홀딱 벗고 나뭇잎 같은 걸로 중요부위만 가리기 같은 게 그들이 그림으로 제시했던 미션들이다. 그걸 똑같이 재현한 후 "마감!"이라고 외쳐야 미션 수행이 완료되는 그 과정은, 이들 웹툰 작가들이 이곳에서 하는 것이 그들이 실제 체험으로 그려가는 웹툰 작업이라는 걸 말해준다.

◆3인방의 '티키타카'는 익숙하지만…
물론 이들이 무인도에서 벌이는 티키타카는 그간 이들의 유튜브를 들여다본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말년은 '침착맨'으로 2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이고, 주호민 역시 이말년과의 단짝으로 유튜브부터 각종 방송에서 활약하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의 조합은 워낙 합이 좋아 최근 나영석 사단도 이들을 출연자로 세운 예능을 내놨다. 자신들이 낸 그림 퀴즈를 길거리 시민들이 맞추는 콘셉트인 tvN '그림형제'가 그것이다. 여기에 MBC '나 혼자 산다'에, 최근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로도 주목을 받는 기안84까지 더해졌다. 이러니 최근 유튜브부터 방송까지 섭렵하고 있는 이들의 티키타카가 새로움을 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기안84는 이 방송을 찍기 전 치러진 사전 미팅에서 먼저 "죄송하다"며 방송에 너무 많이 나와서 단물이 너무 빠져(?)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이러한 우려는 실제로도 드러났다. 무인도에 조금씩 정착해가면서 이들이 보여주는 환장의 티키타카가 어딘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도 쓸데없이 '예술혼'을 불태우는 기안84와 그런 그와 티격태격하는 이말년 그리고 맏형으로써 두 사람을 중재하려 하지만 영 통제가 되지 않는 주호민의 모습이 그것이다. 게다가 이들에게 제시하는 미션이나 게임도 익숙한 면이 있었다. 이를 테면 영화제목 같은 특정 제시어를 주고 그림으로 그걸 표현해 맞추는 게임 같은 건 이미 유튜브에서 보여준 것들이고 '그림형제'는 아예 그걸 콘셉트로 가져온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러니 이들이 무인도에서 벌이는 갖가지 기행(?)들은 이들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할지 몰라도 잘 아는 팬들에게는 너무 익숙하다. 결국 구독자가 200만명이 넘는 스타 크리에이터 같은 출연자를 섭외했을 때는 팬층이 타깃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만찢남'의 익숙함은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만찢남'은 이러한 우려를 알고 있다는 듯이 주우재나 추성훈 같은 게스트를 섭외해 새로운 그림을 만들려 했고, 무엇보다 이 세계를 설계한 이가 누구냐는 궁금증을 자극하면서 '그림 수정권' 같은 새로운 아이템을 넣음으로써 익숙한 이야기의 변주를 가능하게 했다. 즉 그림을 수정할 수 있다는 건 그저 설계자의 뜻대로 끌려가기만 하던 출연자들이 반전의 키를 쥘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막대한 지폐를 그림에 그려 넣어 부유한 무인도 라이프를 즐긴다거나, 설계자라 예상되는 웹툰 작가를 그려 넣어 그들을 무인도로 소환시키는 그런 방식이다.

◆만화와 현실의 부딪침이 재미
결국 '만찢남'은 '무한도전' 식의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시작하지만, 차츰 무인도라는 만화이자 현실의 공간이기도 한 곳에 떨어진 세 명의 웹툰 작가와 이 세계를 밖에서 그리고 있는 설계자와의 대결로 흘러간다. 설계자가 왜 이들을 이런 만화 속으로 끌어들인 것인지 또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목적한 바를 향해 몰아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그 속에 빠져버린 웹툰 작가들은 이를 추리하면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반전 카드로서 '그림 수정권' 같은 걸 활용하며 진실을 찾아나간다. 물론 그 과정들은 익숙한 게임이나 미션들로 채워지지만, 메인 스토리로서 만화와 현실이라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세계관이 부딪치고 거기서 발생하는 궁금증과 웃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만찢남'의 시도는 흥미로운 면이 있다.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지금의 대중문화에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은 많은 가상과 상상을 진짜 현실처럼 받아들이며 소비하는 색다른 문화를 만들었다.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해도, 미래 세계로 날아간 아이돌이라고 해도 그 세계관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대중들은 이를 현실처럼 소비한다. 물론 그건 게임처럼 일종의 관문을 넘어서는 걸 스스로 허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일이지만, 이러한 세계관 개념은 '만찢남'이 그러하듯이 예능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얼리티가 대세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예능도 갈수록 실제 현장의 디테일들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그 정반대로서 가상의 공간 역시 진짜처럼 받아들이고 즐기는 흐름 또한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만찢남'은 익숙한 조합과 미션들이 주는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는 예능이지만, 만화와 현실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세계관의 부딪침을 시도했다는 측면에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이는 예능이다. 향후 불가능해 보이는 가상과 현실의 조합을 배경 삼는 예능들이 나오는 어떤 흐름이 생긴다면, 단연 거론될만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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