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합장이 뭐길래?…억대 연봉에 이권 쥐락펴락 "마음 잘못 먹으면 배불리기 딱"

전문가들 "위탁선거 제도, 공직선거법 준해 개선해야"

22일 대구 달성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한 후보자가 다음달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 후보등록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2일 대구 달성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한 후보자가 다음달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 후보등록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올해로 3번째 치르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벌써부터 '돈 선거' 징후가 나오는 등 혼탁해지고 있다. 출마자들이 조합원 권익 신장이라는 '염불'보다 조합장의 막대한 '잿밥'(권한)에 더 관심 갖기 쉬운 탓이다.

전문가들은 조합장을 선출하는 '위탁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유권자(조합원)에게 출마자 정보를 더욱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불·탈법으로 얼룩지는 조합장 선거…대체 왜?

2012년 2월 경북 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현직 조합장 A씨가 조합원 집을 돌며 2명에게 각각 20만 원, 30만 원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당시 해당 조합장은 비상임으로 연봉 7천만~9천만 원을 받고, 임기 4년에 연임 제한 없이 몇 번이고 당선될 수 있었다.

이에 A씨와 같은 집안 인물들이 20여 년에 걸쳐 조합장을 사실상 '세습'해왔다. 해당 조합 중앙회장이던 B씨 역시 A씨에 앞서 1980년대부터 조합장을 지냈고, 조합 전무와 산하 기관 대표, 조합의 추천서를 받아 채용되는 직원으로도 B씨 자녀와 일가친척이 앉아 있었다.

일각에선 B씨 등이 인사권을 남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중앙회 측은 "임원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능력이 없으면 임용고시도 통과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조합원들 사이에 '장기집권' 불만이 커지던 가운데 A씨는 타 후보의 막판 뒤집기를 우려해 현금을 나눠주려 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될 당시 A씨는 수백만 원이 든 돈봉투를 빼앗기지 않으려 몸싸움을 벌이고 지폐를 찢는 등 공무 집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A씨는 금품 살포 혐의로 구속된 중에서도 옥중 출마를 감행했으나 끝내 탈락하면서 '세습'을 마쳤다. 해당 지역 한 조합원은 "여전히 그 세력이 공고하다. 오랜 기간 집권한 전임 조합장이 힘을 써서 가족에게 온갖 자리를 준 것은 아닌지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상북도선거관리위원회와 농협중앙회 경북본부는 지난 17일 오후 2시 경북 상주시 중앙시장 일대에서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관련 공명선거 릴레이 캠페인을 열었다. 경북선관위 제공
경상북도선거관리위원회와 농협중앙회 경북본부는 지난 17일 오후 2시 경북 상주시 중앙시장 일대에서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관련 공명선거 릴레이 캠페인을 열었다. 경북선관위 제공

영주지역 조합장 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공명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농협 제공
영주지역 조합장 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공명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농협 제공

위법이 명백한 '돈 선거'로 처벌도 불사하며 조합장 자리를 탐내는 이들이 잇따르는 건 그만큼 막대한 돈과 권력을 쥘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농협·축협과 수협, 산림조합의 경우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상임 조합장은 최대 3연임 시 총 12년 임기, 비상임 조합장 경우 경우에 따라선 무제한 연임을 통해 장기간 고액 연봉을 받는다. 연간 수십억 원 예산을 관장하며 임직원 인사권까지 갖는다.

A씨 사례에서 보듯 조합장 등이 마음만 먹으면 가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지인에게도 일자리를 주거나 조합 사업을 통해 지역 내 이권을 쥐어줄 수 있다.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이사회 통과가 필수라곤 해도 '다 아는 주민, 조합원'을 돕자는 데 거세게 반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지역민 유대가 끈끈한 농어촌 지역일수록 더하다. 특유의 지역주의, 관용주의, 혈연·지연·학연 등 인맥에 기댄 금품 살포와 무분별한 비방이 이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5년 이후 위탁선거를 통해 실시하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도입하고도 불·탈법이 여전하다. 경북도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제1, 2회 조합장선거에서도 각각 122건, 105건 등 모두 227건의 불법 행위가 적발됐다.

유형별로 보면 선관위 자체에서 위법 사실을 명백히 입증한 '고발'이 43건(제1회 19건, 제2회 24건, 이하 같은 순서), 수사기관에 추가수사를 의뢰한 '수사 의뢰'가 19건(13건, 6건), 위반 정도가 경미한 '경고'가 165건(90건, 75건)으로 각각 나타났다.

고발, 수사 의뢰 등 처벌에 이른 사례 중에서는 '금품 기부행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고발한 기부행위는 39건(19건, 20건)으로 전체 43건의 90.7%, 수사 의뢰한 기부행위는 14건(9건, 5건)으로 전체 19건의 73.7%에 달했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총 적발 건수(122→105건)는 줄었으나 고발 건수와 기부행위 건수는 각각 5건(6.3%), 1건(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직전 1주일 새 적발과 제보가 몰렸던 과거 사례로 미뤄볼 때 이번 제3회 선거 역시 막바지쯤 적발 건수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경북도선관위는 보고 있다.

대구에서도 앞선 두 차례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54건의 위반 사례가 적발돼 80명이 입건됐다.

농협 김천시지부(지부장 박기화)는 지난 26일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의 성공적 실시와 후보예정자의 공명선거 의식 고취를 위해 김천시선관위와 함께 후보예정자 설명회 및 공명선거실천 결의식을 진행했다.
농협 김천시지부(지부장 박기화)는 지난 26일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의 성공적 실시와 후보예정자의 공명선거 의식 고취를 위해 김천시선관위와 함께 후보예정자 설명회 및 공명선거실천 결의식을 진행했다.

◆"위탁선거 제도, 공직선거법 준해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공직선거법과 달리 제약이 큰 조합장 위탁선거 제도가 '깜깜이 선거' 문제를 키우는 주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선출하는 공직선거법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불법선거 사례를 규정하면서도 출마자와 유권자 권리를 신장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자 출마자의 재산 정보, 학력, 병역, 처벌 이력 등 신상을 알리는가 하면 선거 유세와 토론회, 다채로운 공약 홍보방법을 인정한다.

출마자에게도 예비후보자 등록기간을 줘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주고, 비방 선거나 '돈 선거'가 아닌 선에서 유권자와 만날 다양한 기회를 보장한다.

이와 달리 조합장 선거는 예비후보자 등록제도가 없고, 가족이나 선거운동원 없이 오직 후보자 본인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운동 기간도 후보자 등록 다음날부터 투표 전날까지 2주가량에 그친다.

토론·연설회는 불가능하고 벽보와 공보, 어깨띠, 윗옷, 소품, 전화·문자메시지만 자신을 알릴 수 있다.

출마 예정자 가운데 현직 조합장이라면 유권자 연락처를 구하기 비교적 쉬우나 첫 출마하는 후보는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조차 부족하다.

21대 국회에 '후보자 외에도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선거운동 참여, 인터넷·SNS 등을 활용한 선거운동' 등 선거운동 확대 방안을 담은 개정안이 올라와 있으나 통과되더라도 이번 선거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3월 8일 시행되는
3월 8일 시행되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1일 영양군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농협 영양군지부와 영양경찰서, 입후보 예정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명선거를 위한 결의대회가 열렸다. 농협 영양군지부 제공

조합 중앙회 차원에서 각 조합 운영 실태를 감시감독하는 등 사후 관리할 방법도 없다. 각 중앙회는 지역 수백여 조합 지점의 상세한 보유자본이나 조합원 등 현황을 일일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한계로 인해 손쉬운 '돈 선거'에 빠지기 쉬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돈을 뿌려 마음과 표를 얻고 당선된 뒤에는 '쓴 만큼 회수하자'는 보상심리가 생기고, 이에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며 장기 집권까지 노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 조합 관계자는 "위탁선거제도를 공직선거법에 준해 개선해야 한다. 돈 선거만 막을 것이 아니라 출마자 됨됨이를 알리고 공약 이행 정도를 평가하는 '매니페스토 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돈 선거를 우선 뿌리 뽑자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한 조합 관계자는 "친밀도가 주가 되는 농어촌에선 유권자 역시 '돈 주는 사람을 뽑자'는 기대심리가 없지 않은데 베푸는 사람이 일도 잘할 것이라는 구시대 관습"이라며 "금권선거를 막을 방법부터 찾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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