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나눌 지, 더 기다릴지 결정해야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과두제의 철칙'(寡頭制의 鐵則, iron law of oligarchy)이라는 용어가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1876~1936)가 1911년 자신의 책 「현대 민주주의의 정당사회학」에서 제시한 정치 이론이다.

대규모 조직의 소수 지도자가 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해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경향 또는 그렇게 되리라는 명제를 의미한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모든 권력은 해당 집단의 우두머리에게로 집중된다'는 정도의 의미가 될 것 같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은 로베르트 미헬스의 관점도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오직 한 명의 권력자가 나라를 끌고 가는 체제로 정치 구조를 정립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표현까지 나왔을까.

'여의도'가 어수선하다. 국민의힘은 치열한 당권 경쟁으로 술렁이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현실화에 비상 국면이다.

여당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에 맞는 방향으로 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무리수까지 동원하고 있다. 직전 당 대표가 볼썽사나운 모양새로 물러났고, 새로운 당 대표를 뽑는 과정에선 대통령실이 특정 정치인의 도전을 저지하는 촌극도 연출됐다.

아울러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 특정 인사를 당 대표 후보로 낙점하고 경선 과정에서 지원을 약속하는 대가로 이른바 '바지 대표' 역할을 촉구하는데도 해당 후보는 그저 해맑다.

민주당의 사정은 더욱 적나라하다. 각종 범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민주투사'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는 자리에 현역 국회의원들은 '병풍'을 쳤고 지지자들은 "대표님, 힘내세요"를 외쳤다.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피하기 위해 169석의 금배지가 동원되고 있는데도 당내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인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국회가 내년 총선 공천권을 쥐고 있는 최고 권력자를 향한 아부와 충성으로 가득한 공간이 돼 버렸다. 현역 국회의원들은 '과두제의 철칙'이 권력의 근본적인 속성이고 공천권이 그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는 이상 '갑'을 향한 '을'의 처절한 몸부림은 불가피하다는 변명을 내놓고 있다.

권력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서양에선 권력을 '괴물'에 비유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어떻게 쪼개고 나눌지를 고민해 왔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화다. 수업 중 맨 앞줄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A4 용지 한 장을 전달하곤 종이를 마음대로 잘라 일정 부분만 가지고 나머지는 뒷줄 학생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맨 뒤에 앉아 있던 학생에게까지 종이가 전달되자 이번에는 해당 열에 있는 학생들에게 종이의 일정 부분만 가지고 옆으로 종이를 전달하라고 요구했다. 수업에 참여한 모든 학생이 종이 한 조각씩 갖게 되자 그 교수는 "This is U.S.A"(이것이 미국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동양에선 '사람이 할 탓'이라고 여기면서 어진 나라님의 출현을 기다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세종대왕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 민초들의 설움을 보듬는 선정을 펼칠 텐데 그때 권한이 부족해서 세상을 확 바꾸지 못하면 어떡하느냐'는 정서가 더 크다는 의미다.

다 망가지기 전에 '나눌지' '더 기다릴지'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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