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플라스틱의 역습

정현걸 소설가
정현걸 소설가

현대에 들어와 인류는 플라스틱과 사랑에 빠졌다. 뛰어난 가성비, 유연성·탄력성·내구성·강성(剛性) 등의 특성을 골고루 갖춘 데다 무궁무진한 변신 능력까지 갖춰 인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연스레 우리는 플라스틱의 '편리함'에 시나브로 길들여졌다.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플라스틱 문화. 플라스틱 제품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이은 폐플라스틱 마구 버리기가 일상화된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간편 문명시대'의 개척자이자, 인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필수품이 된 이 플라스틱이 이제는 급속도로 우리의 목을 조여 오고 있다. 이른바 '플라스틱의 역습'이다.

플라스틱의 강점이면서 인류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점은 바로 영속성(永續性)이다. 분해되거나 녹슬지 않는, 이 플라스틱은 지구 구석구석에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자리 잡았다.

썩는 플라스틱을 이용한 '친환경 제품'도 생산되고 있지만, 효용성에서 의문부호를 달고 있는 데다 처리 과정에서도 친환경적이지 않아 실용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한다.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미생물도 있다지만 현재로선 제조 비용이 너무 비싸 상용화가 되려면 갈 길이 멀다.

이런 가운데 어린 바다거북이 큰 거북보다 플라스틱 섭취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알에서 갓 부화한 바다거북의 경우에는 조사 대상 54%가 플라스틱 섭취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가장 끔찍한 내용은, 한 바다거북의 소화기관에서 329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됐고 무게도 10.41g이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날개를 펴고 쉬지 않고 수천㎞ 비행이 가능해 세계에서 가장 멀리 나는 새 중 하나로 꼽히는 '앨버트로스'의 삶과 죽음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바다에 떠 있는 작은 플라스틱을 먹이라고 생각하고 어미 앨버트로스가 새끼의 입에 그 플라스틱들을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한때 천혜의 아름다운 섬이자 새들의 낙원이라 불렸지만, 이제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 돼 버린 북태평양의 미드웨이섬에는 각종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 비닐에 목이 감긴 채 죽은 새 등 수천 마리나 되는 새의 사체가 널려 있다.

이처럼 아기 바다거북의 안타까운 죽음과, 어미 앨버트로스와 어린 앨버트로스의 처절한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과 동시에 인류에게 강력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일찌감치 '바다의 독(毒)'으로 둔갑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뿐만 아니라, 미세플라스틱까지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이제는 천문학적인 숫자로 늘어난 '미세플라스틱 스프'들이 하천과 바다에 떠다니고 있다. 이런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배가 부른 물고기는 '영양 결핍'으로 서서히 굶어 죽게 된다. 바다 생태계로 유입된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통해 생태계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은 이제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이자, 미래 재앙의 진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도 당분간은 대안이 없다. 확실한 대안이 나올 때까지 플라스틱 제품의 무분별한 소비와 무단 투기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플라스틱 제로 운동'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생활 속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작은 실천'부터 선행돼야 한다.

그러다 보면, 썩는 플라스틱의 실용화와 일상화가 이뤄지는 날도 올 것이고, 이산화탄소를 소비하는 미생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저렴하게 생산해 상용화가 이뤄지는 날도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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