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함께한 시간이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건강 악화로 갑자기 가족 곁을 떠났다. 당시 삶은 꽤 크게 흔들렸다. 그 후 몇 달간의 밤을 울며 지새웠고 괴롭게 떠나던 모습이 불쑥불쑥 떠올라 한동안 일상생활에 지장을 빚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길가에 닮은 강아지를 만나면 눈을 떼지 못하고 그와 꼭 닮은 인형이나 물건이 있으면 잽싸게 사두곤 한다.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린 경험은 삶을 쉽게 무너뜨린다.
생(生)의 시간은 유한한데 이 시간을 사랑하는 이들과 온전히 누릴 기회는 잘 얻기 힘들다. 예측할 수 없는 불의의 사고로 누군가는 우리 곁을 떠나거나 혹은 우리가 그들의 곁을 떠난다. 특히 자연재해나 인재의 경우 어찌할 도리도 없이 많은 소중한 이들을 한꺼번에 빼앗아간다. 간혹 우리의 소중한 삶의 터전도 함께.
튀르키예 지진, 이태원 참사,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지난해부터 이어진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자연재해든 인재(人災)든 재난을 마주하면 무너진 일상을 서서히 복구하기 위해 우리는 대피소나 분향소를 세우고 구호물품이나 지원책을 마련한다. 여기에 전국 각지에서 일상으로의 회복을 돕는 봉사자의 손길도 더해진다.
그렇게 몇 달 간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엔 사건이나 사고가 점차 희미해지고 구호와 지원활동도 하나씩 철수하며 다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피해자와 유족들은 사고에서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걸 모르는 채.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의 현장에서 구호 활동에 나선 일본 정신과 의사가 펴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선 참사를 겪은 피해자들의 삶이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 잘 나타낸다. 누군가는 '안전하다'는 감각을 찾기 위해 비극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누군가는 허무와 상실감에 갇혀 산다. 인간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버린 재난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곯았던 문제까지 튀어나오게 만들어 가족과 사회를 해체시키기도 하고 생존자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리게도 만든다. 우리의 생각보다 피해 회복의 길은 멀고도 지난하다.
'화재와 집의 붕괴, 재난사 목격 등 다양한 충격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진 훼도 안전한 장소에서 쉬지 못하고 사생활이 없는 대피소 생활이 장기간 이어졌다. 집에 있는 사람도 무너져 가는 집에서 마음 졸이며 교통이 끊겨 이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수도와 가스가 멈춘 불편한 생활을 해야했다'
'그들은(피해자) 대지진 직후 공포와 불안이 높아진 시기에 마음을 나눌 이웃과 단절돼 있었다. 그래서 안정을 찾을 장소를 찾아 떠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난 후 정신구조활동을 펼치며) 뜻밖에 알게된 사실은 지역에서 숨죽여 사는 정신질환자들이 꽤 있었다는 점이다'
책은 비극을 마주한 현실과 회복 과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생각보다 피해자들이 떠안는 문제는 다양하고 복잡하고 크다. 사고 트라우마로 겪는 정신질환은 물론, 정부가 마련해준 대피소와 임시거처 생활에서의 사생활 노출, 부모 혹은 자녀를 잃은 남은 가족들의 마음 건강상태와 성장 한계 등 우리가 함께 돌봐야할 남은 문제들은 수두룩하다.
이 지역 역시 몇 달 간의 시간이 지나자, 구호‧지원 활동의 손길이 점점 사라지지만 피해자들이 떠안은 숙제는 그대로 남아 제자리에서 맴돈다. 저자는 일상으로의 회복 과정 속 자칫 우리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등 그동안 한국 사회가 겪었던 참사들이 떠오르며 우리 사회가 나섰던 피해자 구호 활동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가족의 유해를 찾기 위해 3년 넘는 시간을 외로이 견딘 유족들, 제대로 된 추모라는 이름도 걸지 못한 채 병과 싸워왔을 화재 피해자들,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을 그들을 제대로 돌보기는 커녕 우리는 너무 무심했고 또 무심했다. 31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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