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대한민국의 등불 3.1운동과 동학

신효철 더불어민주당 대구 동구갑 지역위원장

신효철 더불어민주당 대구 동구갑 지역위원장
신효철 더불어민주당 대구 동구갑 지역위원장

올해는 3·1운동 104주년이며 동학혁명 129주년이다. 1919년 3·1운동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재출발점이라면 그 원점은 1894년의 동학혁명이다. 3·1운동 당시 한반도 전역에서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도농산어(都農山漁), 직업 여하, 국내·국외를 물론하고, 전체 한민족이 궐기하였던 그 경험과 그 마음이 시민의식(市民意識)으로 싹터서 발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이 갑오년(1894) 동학혁명이었다.

그 근거 중 하나는 3·1운동의 발화점이 되었던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9명이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지도자(大接主)들이었다는 점이다. 또 동학혁명 당시 황해도 지역 접주로 참전한 김구(金九) 선생은 3·1운동 이후 성립된 상해임시정부의 기둥으로서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김구 선생은 귀국 후 천도교를 방문하여 천도교(동학)-3·1운동-상해임시정부-광복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도도한 줄기를 직접 증언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동학(혁명)과 3·1운동은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분기점을 형성하였다. 또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폭력·무저항운동 등 세계 민족해방운동사에 영향을 주었으니, 3·1운동이야말로 한류(韓流)의 원조이다.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 손병희 선생은 동학 교주 해월 최시형의 지휘 아래, 전봉준과 함께 결의형제(結義兄弟)하여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끌고 공주(우금티) 전투를 지휘한 동학군 통령(統領)이었다. 3·1운동의 횃불은 표면적으로는 1년여 만에 진화된 듯하였으나, 그 불길은 만주와 중국 대륙으로 옮겨져 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고, 국내적으로는 신문화운동을 통해 민족적 역량을 재건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의암 손병희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은 동학의 아동 존중 사상을 바탕으로 어린이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장래를 기약했고, 의암의 지도하에 성장한 신청년(新靑年)들은 '개벽'(開闢) 잡지 등을 통해 민족의 사상적, 문화적 역량을 구축해 나갔다. 한편으로 천도교 지도자들은 신간회(新幹會)라는 '민족유일당' 운동의 핵심으로서 일제 강점하의 정치적 운동을 모색하였다.

해방 정국의 혼란과 분단, 민족 상쟁, 그리고 독재 정부와 군사 쿠데타 등의 흐름이 20세기 후반기 우리 역사를 암울하게 뒤덮었으나 그 저변에서는 4·19혁명을 필두로 한 민주화운동에서부터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도도한 흐름이 거대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었으니, 이것은 다름 아닌 동학(혁명) 이래 3·1운동을 거치면서 형성된 거대한 '민족적 역량'이야말로 한국 근현대사의 근본적인 세력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2014)과 3·1운동 100주년(2019)을 지나면서 짧게는 개헌을 축으로 하는 '87년 체제' 개혁에서부터 길게는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설계하는 움직임이 밑바닥에서부터 진행되고 있다. 후자는 건전한 자주국방 체제의 대한민국, 남북의 교류와 협력 체제의 굳건한 재건, 한류를 바탕으로 세계인의 마음에 감응하는 문화적 선도 국가로의 도약,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창조적으로 개벽해 나가는 한민족 지성의 발휘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동학혁명에서 3·1운동 시기까지의 역사적 경험과 내용은 바로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위한 비전의 원형을 담고 있다. 동학혁명 주체 세력의 폐정 개혁안과 3·1운동 독립선언서, 대한민국 제헌 헌법을 비교 분석한 결과 동학혁명 당시 제기됐던 인권, 국권, 경제권 요구가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 녹아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오늘날 시대적 요구가 되고 있는 개헌에 즈음하여, 3·1운동의 뿌리인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함으로써 흐릿해진 민족사의 정통을 뚜렷이 빛나게 하고, 험난한 미래로의 항로를 밝히는 등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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