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두유 1팩으로 하루 버텨" 돈 계산 안 맞을 때마다 남편한테 맞아 청각장애

폭력적인 남편과 별거…연락두절 10년, 이혼하자는 전화도 안 받아
보이스피싱 당해 4800만원 날려…충격으로 수면제 한 달 치 삼켜
뇌출혈까지 겹쳐 거동 불편…"일 할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지난 24일 박동채(가명·61) 씨가 홀로 집에서 두유를 마시려 하고 있다. 동채 씨는 뇌병변으로 거동이 어렵고,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오른손으로는 물건을 제대로 집기도 힘들다. 보증금을 빼 빚을 갚느라 이 집에서도 곧 쫓겨날 판국이다. 윤정훈 기자
지난 24일 박동채(가명·61) 씨가 홀로 집에서 두유를 마시려 하고 있다. 동채 씨는 뇌병변으로 거동이 어렵고,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오른손으로는 물건을 제대로 집기도 힘들다. 보증금을 빼 빚을 갚느라 이 집에서도 곧 쫓겨날 판국이다. 윤정훈 기자

"김치에 뭐 넣었는데."

새로 담근 김치를 맛본 남편이 물었다. 음식물 쓰레기라도 씹은 표정이다. 김치에 들어간 재료들을 열심히 브리핑했다. 한창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그 둔탁한 소리에 두 눈이 질끈 감겼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인사 한마디 없이 바로 출근했다. 그리고 꼬박 한 달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 한 통 없이.

그가 '멸치 액젓'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화가 나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그냥 떠나버리는 사람, 혼자 남겨진 상대방만 미치게 만드는 사람.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연락두절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럼에도 그와 나는 여전히 부부다. 이혼하자는 연락도 안 받고, 혼자 이혼 처리를 할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툭하면 연락두절·장부 계산 틀리면 폭력… 맞아서 청각장애까지 생겨

결혼 전의 박동채(가명·61) 씨 인생이 무채색이었다면, 후의 인생은 짙은 검정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경리로 일하며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던 동채 씨. 27살 때 직장 동료로부터 동갑의 기술직 공무원이었던 남편을 소개받아 사귀게 됐다. 1년간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연애할 때는 드러나지 않던 남편의 여러 단점이 동채 씨를 힘들게 했다.

불만이 있으면 아무 말 없이 잠적하는 점도 동채 씨를 힘들게 했지만, 더 고통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돈 관련 문제에 한해서는 남편은 침묵하지 않고 불만을 드러냈다. 다만, 주먹이 사용돼서 문제였다. 남편은 동채 씨에게 매달 장부를 쓰게 시켰는데, 실제 기업의 회계 담당자처럼 부기(자산, 자본, 부채의 수지·증감 따위를 계산해 장부에 기록하는 기술) 형식으로 작성하게 했다. 연말에 1년 치 장부를 정리해 제출해야 할 때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엄격한 검사 끝에 계산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매를 맞았다. 남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부위만 골라 때렸다.

동채 씨는 장부 검사를 맡던 중 남편에게 맞아 청각장애가 생겼다. 사소한 부분에서 금액이 안 맞자 남편이 동채 씨에게 주먹을 휘둘렀는데 이를 피하려다 귀를 잘못 맞은 것. 동채 씨는 이로 인해 청각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남편은 동채 씨가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곳에는 돈을 쓰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에 동채 씨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도 있지만, 그러자 남편이 생활비를 아예 끊어버려 하는 수없이 일을 그만둬야 했다.

시간이 지나 남편이 더 폭력적으로 변할수록, 동채 씨가 친정에 가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남편 역시 집에 안 들어오는 빈도가 점점 늘며 동채 씨와 남편은 거의 별거하는 관계가 됐다. 그때쯤 동채 씨의 유일한 편이었던 어머니까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따라 세상을 떠나며 동채 씨는 점점 더 고립돼갔다.

◆보이스피싱 당해 극단적 선택까지… 가까스로 살아났으나 뇌출혈에 빚만 가득

불행이 불행을 부른다고 했던가. 이후 동채 씨는 혼자 살고 있던 전셋집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빠졌다. 당시 집주인은 동채 씨에게 급한 사정이 생겨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집을 비워달라고 부탁했다. 이사 비용은 부족하고, 집주인 독촉은 점점 심해지던 와중에 동채 씨는 '자칭' 농협 대출상담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그 상담원은 어떤 증권을 사면 동채 씨의 신용등급이 지금보다 높아지고, 그럼 고액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이었다. 궁지에 몰려 판단력이 흐려진 동채 씨는 그렇게 4천800만원을 날렸다. 이사도 실패했다. 혹시나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싶어 남편에게 연락해봤지만 역시나 연락이 안 됐다.

결국 동채 씨는 수면제 한 달 치를 삼켰다. 평소 주기적으로 말동무가 돼줬던 보건소 직원이 때마침 이를 발견했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된 동채 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이후 이 보건소 직원 덕분에 파산신고도 하고, 다른 집으로 이사도 하게 됐다. 연이은 불행에 허덕이다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 동채 씨.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자신을 나무라며 이제는 정말 잘살아 보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후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야간 영업을 하는 식당에서 열심히 일했다. 밤낮이 뒤바뀐 채로 힘든 일을 4년이나 해서였는지, 동채 씨는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뇌출혈이었다. 대구의 한 병원에 1년 6개월간 입원했다. 잘살아 보려고 열심히 번 돈은 병원비로 다 나갔다. 뇌출혈 여파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돼 지금도 거동이 어렵다.

퇴원 후 작년 4월부터 병원 근처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동채 씨. 이 전셋집 보증금 역시 아는 언니에게 빌린 돈으로 마련했다. 생판 남인 동채 씨에게도 큰돈을 빌려주고, 사정을 딱하게 여기며 독촉 한번 안 하던 언니였다. 그런 언니가 최근 자신도 상황이 어려워 돈을 빨리 갚아주면 좋겠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동채 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언니에게 빌린 돈은 갚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 보증금을 빼서 600만원은 갚았다. 남은 빚 1천400만원을 갚고자 우선 저렴한 원룸으로 이사하려는데, 보증금 200만원과 이사비용 100만원 등 단돈 300만원이 없어 그러지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동채 씨의 한 달 소득은 정부보조금 62만원이 전부다. 여기에 뇌출혈로 인한 뇌 병변과 오른손에 생긴 퇴행선 관절염으로 매주 신경외과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하필 비급여라 의료비로만 한 달 30만원이 고정적으로 든다. 여기다 보증금이 적은 대신 월 임대료로 24만원이나 내고 있기에 고정 지출을 제외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그나마 남아도 빚 갚는 데 다 쓰고 있다.

"다리라도 빨리 나아져서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동채 씨는 말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에게 따스함을 전해준 이들에게 갚을 빚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채 씨는 오늘 하루도 두유 1팩으로 끼니를 때우며 삶을 버텨보기로 했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069-05-024143-008 / 우체국 700039-02-532604

예금주 : (주)매일신문사(이웃사랑)

▶DGB대구은행 IM샵 바로가기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지난주 성금내역]

◆폭력적인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어렵게 4남매를 키웠으나 하나뿐인 딸은 위암으로 눈 감고 남은 세 아들 무관심 속에서 홀로 사는 이순조 씨에게 2,583만원 전달

폭력적인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어렵게 4남매를 키웠으나 하나뿐인 딸은 위암으로 눈을 감고, 남은 세 아들의 무관심에 홀로 사는 이순조(매일신문 2월 14일 자 10면)씨에게 2천583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국민의힘 대구여성정치아카데미 총동창회 125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키네마섬유(이필남) 10만원 ▷조득환 10만원 ▷하혜련 5만원 ▷강종수 3만원 ▷권규돈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박희숙 2만원 ▷신종욱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이진기 5천원 ▷'김나현쌤' 7만원 ▷'김민규안다겸' 5만원 ▷'따스한햇살' 5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 어학당에서 인연으로 맺어져 임신했으나 640g '극단저체중출산아' 낳아 수억원 치료비 필요한데 보험 적용도 안 돼 막막한 응웬탄히엔 씨 부부에게 2,562만원 전달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유학와 인연을 맺고 낳은 아이가 640g '극단 저체중'으로, 당장 수억원의 치료비 필요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보험 적용도 안 돼 막막한 응웬탄히엔 씨 부부(매일신문 2월 21일 자 10면)에게 48개 단체, 150명의 독자가 2천562만9천21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탑리더스아카데미 1기 일동 25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대구공공관리시설공단 100만원 ▷㈜세원정공물산 100만원 ▷피에이치씨 큰나무복지재단 100만원 ▷빛명상본부 6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박찬종) 45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주)지제이인터네셔널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주)선진건설(류시장) 5만원 ▷(주)태광아이엔씨(박태진)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란옥(이순자)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안안과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인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노이텍크 2만원 ▷평촌모녀부동산 2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조현권 각 100만원 ▷이정추 90만원 ▷김진숙 50만원 ▷이신덕 30만원 ▷권경자 김순향 김옥선 박철기 각 20만원 ▷고영준 곽용 김미희 남영희 민병열 박종천 성현탁 오정환 이유미 이재명 이진영 전시형 정석봉 조득환 진용주 최창규 허정원 허창옥 각 10만원 ▷안정원 8만원 ▷김도훈 김제나 박원경 백미화 변대석 서준교 손윤옥 양민우 윤선희 이경자 이진술 이창영 임채숙 전우식 정원수 지봉진 진국성 최문혜 최영모 최종호 최한태 각 5만원 ▷강민주 김봉화 김종균 김태욱 김평섭 박승호 박은경 송현철 신외식 양명숙 오미경 이상준 이서연 이서현 이석우 이옥희 임경숙 천미경 최춘희 하경석 각 3만원 ▷김덕우 김원녀 문석 박기영 박현주 배영락 백진규 송재일 신은지 신일성 안현준 여현철 유경희 윤신애 이병순 이운호 이재민 이재열 이정화 이해수 조민영 차정혜 천정창 최선태 각 2만원 ▷김갑용 1만5천원 ▷권오영 권오현 권유진 김경진 김균섭 김다영 김보혜 김상근 김성진 김태천 김현식 노윤경 류은자 문민성 박부훈 박상옥 박애선 박인배 박태용 박홍선우순화 우철규 유귀녀유명희 유은영 유지영 이다희 이승무이운대 장형근 정서원 조영식 조인숙 지호열 최경철 한정화 황태윤 각 1만원 ▷이현수 9천999원 ▷조용인 5천원 ▷이장윤 2천원 ▷김기만 이현주 최연준 각 1천원

▷'범물동김선우' '사랑나눔624' '응웬탄히엔씨 팟' '주님사랑' 각 10만원 ▷'베트남 부부 아기' 5만원 ▷'노엘라' '아기야 힘내' 각 3만원 ▷'류현수 신지연' '석희석주' 각 2만원 ▷'조동수**힘내세요' 1만원 ▷'김명숙도움' 3천원 ▷'메이' 1천22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