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자유수호연맹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지금 미국에서는 '자유수호연맹'(ADF·Alliance Defending Freedom)이라는 극우 로펌이 150년 전인 1873년에 제정된 법의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 시끄럽다. 1873년이라면 고종이 아버지 대원군을 물리치고 왕 노릇을 한 아득한 세월의 해인데, 미국에서는 그때 만들어진 법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인을 두 개의 적대세력으로 극단적으로 분열시킨다는 비난까지 나온다.

지난해 연방대법원이 낙태권 인정 판결(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한 뒤 낙태권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2024년 대선을 둘러싸고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면서, 낙태권 반대론자들이 음란 서적의 우송과 함께 피임 및 낙태 약물과 낙태 도구의 배송도 금지한 1873년의 콤스톡법을 들고나섰다.

'콤스톡법'에 의해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와 월트 휘트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전문학 작품이 외설이라는 이유로 우편 발송 금지 목록에 포함되고, 낙태나 피임에 관한 정보가 포함된 15톤 분량의 책이 압수되고, 4천 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최소 15명이 자살했다고 콤스톡이 자랑할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콤스톡이 죽은 1915년 전후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 이상 법원이 그 법을 낙태가 아닌 피임에만 엄격하게 적용한 것에 반대해 '자유수호연맹'이 콤스톡법을 불러내 낙태까지 금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연방 법무부는 그 주장을 거부했지만, 일부 주의 법무부는 그 주장을 받아들여 소송을 제기했다. 아울러 자유수호연맹도 연방대법원 판사들을 노려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지난해 낙태권 인정 판결처럼 미국 전역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콤스톡법을 완전히 부활시키는 판결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콤스톡법'의 일부는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반할 수 있으며, 피임에 관한 법률 조항은 산아제한을 보호하는 대법원 판결과 명백히 모순되지만, 낙태에 관한 '콤스톡법' 조항에는 장애물이 없어서 콤스톡법의 부활에 대해 연방대법원으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인해 미국 여성들은 임신 첫 3개월 동안 낙태권을 완전히 보장받았다. 이후 3개월 동안은 제한적으로 임신중단이 가능했으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임신 중단이 금지됐다.

그러나 그 뒤 수십 년 동안 12개 이상의 주에서 임신 중단 반대 판결을 내리면서 낙태권이 서서히 축소돼 오다가 2022년 낙태권 부정 판결이 내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나라 여성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에 처했고, 이 나라에서 정의를 뒤집고 여성의 기본권을 박탈하기로 한 오늘 결정의 핵심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세 명의 대법관이 있다"며 "이번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은 대법원의 전례 없는 비극적 오류이며, 이는 근본적인 헌법상 권리 박탈이기에 즉각적으로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단언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여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정치인의 변덕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개인적인 결정으로 인해 수백만 미국인의 본질적 자유가 공격당했다"고 비판했다. 대다수의 미국인도 판결이 뒤집히기 직전에 실시된 CNN 여론조사에서 66%대 34%로 판결 번복에 반대했다. 1989년부터 진행된 CNN의 여론조사에서 판결 번복을 찬성하는 비율은 36%를 넘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미시시피주지사 같은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불의 중 하나를 극복하도록 국가를 이끌었다"고 찬양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은 낙태권 부인에 그치지 않고 피임이나 동성애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한 '결혼존중법'이 통과되자 '자유수호연맹'은 "결혼존중법은 종교의 자유를 훼손하고, 소송 위협으로 동성애를 둘러싼 토론을 묵살할 것"이라고 비판했는데 앞으로 동성 성관계나 동성혼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들도 뒤집힐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낙태죄는 2019년 헌법불합치 판결로 폐지되었으나 동성 간 결혼은 인정되지 않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딴나라 미국의 상황이고 대원군 시대보다 더 먼 이야기이지만, 세계 최하인 출산율의 상향을 위해 피임을 금지하자고 주장하는 애국적 '자유수호연맹'이 성조기를 흔들며 한국에도 곧 등장할지 모른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