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이 현실이 되고 있다. 전 국토의 12.6%에 불과한 수도권 인구가 이미 전국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2022년 기준 수도권 인구는 전국의 50.2%를 차지한다. 경제적으로도 수도권이 지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기준 52.8%로 나머지 지방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렇게 격차가 커졌지만 앞으로도 개선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노령 인구의 비율이 높은 지방의 인구 감소는 더욱 빨라질 것이고 그만큼 격차도 커질 것이다.
이러한 인구 격차는 정치적 대표성의 격차로 이어진다. 50.2%의 인구가 수도권에 거주한다면 원론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의 50.2%는 수도권에서 선출돼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정치적 평등은 1인 1표제(one person, on vote)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례대표 의원 대다수의 생활 기반이나 활동 영역이 사실상 수도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300명 국회의원 중 절반을 훨씬 넘는 이들이 지역적으로 수도권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지방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권의 진지한 논의가 절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늘어난 인구만큼 수도권의 정치적 영향력은 지방을 압도하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불리해진 지방의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 독일 등에서 채택한 양원제가 지역 대표성을 보장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하원의원은 철저한 인구 비례에 따라 주별 의석이 배분된다. 2020년 기준 인구가 제일 작은 주는 와이오밍으로 57만6천851명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는 3천953만8천223명으로 와이오밍의 68.5배이다. 주별로 하원의원 한 명씩은 두도록 한 까닭에 와이오밍에는 1석이 배분되었고 캘리포니아에는 52석이 배정되어 있다. 하원에서의 주별 정치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와이오밍과 캘리포니아 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상원은 미국의 50개 주에 2석씩 똑같이 배정하여 지역 간 인구 차이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하원이 인구 대표라면 상원은 지역 대표인 셈이다.
우리도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상원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사실 개헌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은 현 선거제도의 개정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재 국회에서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어 선거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과거 선거제도 개정 논의에 학계, 시민단체가 관심을 보였다면 이번에는 지방 주민들이 논의 과정에 중요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제도 개정은 무엇보다 지방의 정치적 목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평등의 원칙을 고려할 때 수도권 의석 축소 등 지역구 의석 재조정을 통해 지방을 대표하는 의원 수를 늘리긴 어렵다. 또한 현직 지역구 의원들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지역구 의석 축소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비례대표 의원 50명을 증원하여 이들이 지방을 대표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만을 대표하는 의석을 50석 추가로 늘리자는 것이다. 이들의 중복 입후보를 허용하고 비례 명부뿐만 아니라 지역구에도 출마하게 한다. 예컨대 국민의힘으로 목포에, 더불어민주당으로 안동에 출마하는 것처럼, 정치적 험지에 나서게 하고 낙선하면 각 당에서 정한 방식으로 비례 의석으로 구제해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처럼 한 정당이 지역 의석을 독점하는 일도 막을 수 있고 지역의 정치적 대표성도 다양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늘어난 의원 수만큼 수도권에 비해 불리했던 지방의 정치적 목소리를 강화할 수 있다. 350명으로 늘어날 정수 확대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지만,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고 수도권과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지방의 정치적 파워가 제도권 내에 강화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역 격차의 문제는 중앙의 시혜나 배려가 아니라 지방이 정치적으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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