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부정부패 수사를 ‘정치 탄압’으로 둔갑시키는 도구가 된 민주당 당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의 '가결 같은 부결' 이후 민주당에서 이 대표의 거취를 놓고 친명과 비명 간 내홍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이 대표를 기소할 경우 당헌 80조를 적용하는 문제가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헌 80조는 "사무총장은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 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명계는 이 대표가 기소되면 즉시 이 조항을 적용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친명계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 근거는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제3항이다. 이는 지난해 8월 이 대표를 선출한 전당대회에서 신설됐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현실화에 대비한 '셀프 구제' 라는 비판이 빗발쳤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3항이 이 대표 보호 목적의 위인설법(爲人設法)임은 친명계인 조정식 사무총장이 재확인해 줬다. 조 총장은 체포동의안 표결 하루 전인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표 수사는) 정적 제거를 위한 야당 탄압, 정치 탄압이기 때문에 당헌 80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낯간지러운 '해석의 비약'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대장동 특혜 비리와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은 전형적인 부정부패 혐의이다.

이런 식이라면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의원은 모두 당헌 80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라임자산운용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최근 기소된 기동민·이수진 의원에 대해서도 당헌 80조 적용을 일단 유보하겠다고 한다. '반부패 정치 혁신'을 내걸고 만든 당헌 80조가 부정부패 범죄 수사와 기소를 '정치 탄압'으로 둔갑시키는 요술 방망이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의 범죄 혐의 수사는 어떤 기준으로도 '야당 탄압'이나 '정적 제거'가 될 수 없다. 이 대표에게 당헌 80조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국민 사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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