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하재영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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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영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하재영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검지를 다치는 일이 잦다. 아마 손가락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손가락이기 때문일까. 종이에 베이기도 하고 요리를 하며 빠르게 다루는 칼에 슬쩍 상처가 나기도 한다. 깊지 않은 상처에도 불편은 크다. 검지 하나 다쳤을 뿐인데 나머지 손가락 움직임은 영 시원찮다. 물건을 쉽게 집지 못하고 세수 한 번 편하게 못한다. 심지어 젓가락질도 영 서툴다.

검지의 다른 말은 '엄마 손가락'이다. 물론 집게 손가락이 사전적 용어에 더 가깝겠지만 누구나 어릴 적 엄지는 아빠 손가락, 검지는 엄마 손가락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테다. 검지를 다친 뒤 일상 생활에 제약을 겪었을 때 문득 '엄마'의 모습이 겹쳤다. 일상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인 엄마, 그러다 문득 엄마의 빈자리가 생겼을 때 일상의 흔들림(혹은 불편함)은 꽤 크다.

그렇게 크나큰 존재인 엄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잘 알까. 엄마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이기도 하다.

논픽션 작가로 자리매김한 하재영 작가의 2년 만의 신작이다. 저자가 그의 어머니의 생애사를 인터뷰하며 본인의 이야기로 재해석한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다.

부모가 정해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고된 시집살이를 겪으며 아이를 키워내고, 한 순간에 망해버린 남편에, 그래도 가정을 지켜내고자 식당일을 전전한다. 저자의 어머니가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인데, 가부장적 체제를 경험하며 커왔던 기자가 바라봤던 나의 엄마와 닮아있어 마치 한 번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았던 우리 엄마의 마음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결혼 후 엄마의 첫 번째 결심은 포기하자였다. 이야기하는 것과 기대하는 것. 결국 엄마가 포기한 것은 목소리가 아닐까….'

'엄마의 노동은 개인적 포부나 의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롯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기인한 것이었다.'

저자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모성에 덧씌워진 신화에 대해 꼬집는다. 우리 사회는 '어머니'에게 먹이고 입히며 한 인간의 성장을 이끌며 대가없는 가사노동에 내몰리는 모든 영역을 관장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허재영 작가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다가서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치부하고 미치지 못하면 가혹한 평가를 쏟아내는 것은 결코 온당치 않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세계의 실패를 직시하는 것보다 그 실패를 어머니라는 개인에게 떠넘기면서 근본적 원인을 은폐하고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작가의 꼬집음이 거대하고 장황한 결말에 다다르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부당한 사회를 바꿔야한다고? 저자는 직설적인 해답을 내놓기보다는 관점을 뒤튼다.

'나는 비록 시대의 관습에 저항하지 못했지만 너희를 보면 내가 아무 의식 없이 상황이 이끄는대로만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너희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니고 부모 자식도 엄연히 별개의 인간이지만 너희의 좋은 면을 발견할 때 내가 영향을 준 부분도 있을 거라고 믿어.'

작가의 어머니는 본인의 억눌렸던 지난날을 전달하면서도 결코 수동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고백하는데, 즉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은 단지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라 자유이자 해방이 된다. 스스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엄마의 고백을 통해 저자도 엄마를 주체적 인간이기를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이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엄마의 결혼은 아버지들의 담합으로 성사되었고 출산은 선택의 여지없이 이루어졌으며 시집살이는 상의 없이 결정되었지만 그 일은 엄마의 삶에서 표면이지 내면은 아니다…엄마는 자신의 표현처럼 생각하는 자, 질문하는 자로 살았다.'

결국 어머니는 우리들의 정신적 상속자다. 272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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