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친구

차홍길 아양아트센터 전시기획팀 주임

차홍길 아양아트센터 전시기획팀 주임
차홍길 아양아트센터 전시기획팀 주임

내 고향은 경상남도에서 덕유산 한줄기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거창이라는 지역이다. 거창은 군으로 분류될 만큼 인구수가 많지 않고, 그렇기에 학교의 수 역시 적은 편이다. 때문에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고등학교 졸업까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그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의 수가 20명 정도 된다. 특별한 목적 없이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함께 땀 흘리며 뛰어놀기도 했던 그 시간들에 우리는 가진 것 하나 없이도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작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때론 슬픔을 나누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졸업 이후 생업을 위해 각지로 흩어져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친구들이 지난주 한 친구의 결혼식으로 오랜만에 모였다. 10여 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함께 있을 때면 여전히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친구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며 결혼한 친구를 보내주었다. 이어지는 뒤풀이에서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사회 속에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영락없는 10대의 표정과 말투로 돌아가게 된다. 어느새 친구들은 회사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는 등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지만 함께 있을 때면 마법처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전에 얼마나 철없는 고민들을 했고 실없는 시간들을 보냈었는지, 그럼에도 행복했었던 추억들에 대해 떠들다 보면 새삼 어른이 된 우리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추억을 안주 삼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 채 술잔을 기울인다.

자리가 끝난 후 혼자 적막한 택시 안에서 역시 이들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정과 가치를 함께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친구라는 이유로 가장 기쁜 순간과 힘든 순간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주고받은 그들에게 몇 마디의 단어로 정형할 수 없는 고마움의 감정을 느낀다. 함께 성장한 우리는 어느새 손뼉이 잘 맞을 만큼 서로를 닮아 있었고,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즐거웠던 나날들을 생각하며 택시 안에서 잠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슬픔과 시련을 마주한다. 몇 번이고 마주하는 삶의 언덕 앞에 설 때마다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라는 말로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힘을 주는 친구가 있다. 그들로 인해 어떠한 일 앞에서도 의연하게 웃으며 대처하고,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신뢰로 다져진 이들과의 관계는 온통 무형의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유형의 어떠한 것보다도 우리의 삶에 분명히 유의미하게 존재하는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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