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폴란드와 이재명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영원한 국가 이익이 있을 뿐이다.' 19세기 영국 총리 파머스턴의 이 경구는 국제정치를 관통하는 철칙이다. 수많은 실례가 있지만 독일과 폴란드의 현대사만큼 이를 잘 실증하는 예도 드물다.

1939년 폴란드를 동서로 나눠 먹은 독소불가침조약에 따라 폴란드 서부 지역을 점령한 나치 독일은 폴란드라는 국가, 국민, 문화를 지워 버리려 했다. 점령 첫해에 모든 폴란드 신문, 도서관, 극장, 영화관, 학교, 박물관을 폐쇄했다. 가톨릭교회는 완전히 독일식으로 전환돼 폴란드어를 사용하는 교구는 모두 해체됐다.

나치 점령 정책의 특히 포악한 점은 폴란드 두뇌 집단 제거에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침공 전부터 '타넨베르크 사업'이란 정교한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정치인, 지식인, 배우, 교사, 의사, 사제, 예비역 장교 등 6만1천 명을 제거 대상으로 선정한 '폴란드 특별 기소 대상 목록'이란 살생부(殺生簿) 작성의 1단계와 살생부에 오른 이들을 체계적으로 비밀리에 학살하는 '지식인 특별 행동' 작전의 2단계로 실행됐다.

'지식인 특별 행동'은 1939년 가을에 시작돼 1940년 봄에 마무리됐는데 모두 10만여 명의 사회 지도층 인사가 살해됐다. 나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평화특별행동'이란 후속 계획을 마련해 1940년 봄부터 여름까지 사회 지도층 7천 명을 포함한 3만 명 이상을 학살했다.

이들을 포함해 나치 점령하에서 살해된 사람은 폴란드 유대인 270만~300만 명, 비유대 폴란드인 180만~277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 폴란드는 이런 잊을 수 없는 가해의 역사를 뒤로하고 러시아라는 적에 맞서기 위해 독일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곧 미국까지 참여하는 합동 군사훈련도 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며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 설정을 제시한 데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운동 정신을 망각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죽창가'만 안 불렀지 반일 감정에 편승해 정치적 이득을 취한 문재인 정권의 '과거사 우려먹기'와 판박이다. 교활하고 비열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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