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개딸·수박 등 넘쳐나는 혐오적 정치 언어, 정치권 안 부끄럽나?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요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주변에 단어 풀이를 부탁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기사 속 단어의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를 오래 경험한 홍준표 대구시장조차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 대표의 열혈 지지층 가운데 여성들을 뜻하는 '개혁의 딸' 줄임말인 '개딸'이라는 어휘 사용과 관련,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판"이라며 매우 부적절한 단어 사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소속 의원 20%가량이 반란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자 민주당에서 '수박'도 중심 단어가 됐다. 일부 친이재명계 의원들과 강성 지지자들이 '수박 색출'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수박이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비명계 의원들을 지칭하는 은어다. 이 대표 지지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재명이네 마을'에는 비명계 의원의 실명과 지역구를 명시한 '수박 리스트'까지 등장했다.

개딸·수박 이외에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 중 남성들에게는 '양아'라는 말도 쓰인다. '양심의 아들'의 줄임말이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도덕적 우위를 상징하는 개혁과 양심의 자녀들이라는 지위를 부여, 팬덤 정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읽힌다. 극도의 단어 축약을 통해 선동적 이미지까지 만들어 내면서 팬덤 정치 경로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받아들인다.

민주당보다 정도가 훨씬 덜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도 혐오적 정치 언어를 쓰고 있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의 수많은 막말 대행진이 이를 증명한다. 경쟁 후보를 '똘마니'로 비하하는가 하면, '선거판 연탄가스' '연탄가스 쐰 바퀴벌레' '겁먹은 개' 등의 듣기 민망한 언어가 난무했다. 정치는 함께 모여, 함께 의논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다. 혐오를 부르는 배제적 언어로는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정치권은 정치가 무엇인지 다시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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