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유림단체인 명륜회와 용화명륜회는 1973년부터 매년 3·1절이면 화북면 출신 광복의사들의 제향을 올리고 있다.
지난 3·1절 역시 용화정 공원에서 강영석 상주시장을 초헌례로 해 열네 분의 광복의사 제향을 올렸다.
제향 대상에 화북면 출신이 아닌 문경 출신 항일의병대장 이강년(1858~1908) 선생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이 선생은 문경 출신 의병장이기 때문에 기념관과 사당, 생가가 모두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96에 있다.

상주시와 문경시 등에 따르면 전주 이 씨로 효령대군의 19세손인 선생은 1908년 일본군에 끌려가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당시 독립투사들이 매장된 곳은 일본군에 의해 마구 파헤쳐지는 사례가 빈번했고, 후손들 역시 수배령이 떨어져 몸을 피해야 될 상황이었다.
이에 상주 화북 유림들이 나서 일제의 감시를 피해 목숨을 걸고 선생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충북 제천으로 몰래 옮겨 가매장을 했다가 2년 후인 1910년 지금의 상주 화북면 입석리 묘소로 모셔왔다.
특히 상주 유림들은 이 선생을 정신적인 지주로 여기고 계를 조직해 113년째 대를 이어 벌초 등 묘소를 관리해 왔으며, 지금도 이 지역 유림단체인 명륜회가 관리해오고 있다.
운강 이강년기념사업회와 후손들은 수년 전부터 상주시와 명륜회 등을 방문해 선생의 묘소를 문경기념관으로 이장하는 데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명륜회는 "운강 선생은 대한민국의 영웅이다"며 "113년이 지난 시점에서 묘소 이장은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1896년 가산을 털어 문경·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정미의병 때는 고종의 비밀칙령을 받아 도창의대장으로 추대돼 문경 갈평·강원도 백담사 전투를 비롯해 안동, 봉화 등에서 대승을 거뒀다.
1908년 7월 충북 제천 작성전투에서 붙잡혀 그해 10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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