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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칼럼] 윤석열 정부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전 국회의원

윤희숙 전 국회의원
윤희숙 전 국회의원

4년 전 한 언론사 주최 포럼에서 당시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무엇으로 기억되겠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이 본격화되는 시점이었던지라 장내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시 후 그의 대답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끌어올린 정권으로 남겠다'였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진부할 정도로 무난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기억에 콕 박힐 만큼 이례적이었던 것은 그 순간 포럼 참가자들의 반응이었다. 여기저기서 '도대체 어떻게요' '지금 하는 정책으로요?' '그렇게 하는데 잠재성장률이 오릅니까' 같은 불만스러운 목소리들이 산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감히 부총리 발언에 전문가들이 짜증을 내다니, 점잖은 자리에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었다.

그날 분위기로 충분히 예견되었듯, 홍 부총리의 희망은 결국 좌절됐다. 최장수 부총리의 긴 임기 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새로이 발굴되지도, 개인과 기업의 역량이 도약할 제도적 기반의 단초가 마련되지도 못했다. 사회적 갈등이 치유되기는커녕 국가 발전의 토대인 사회 응집력을 왕창 깎아 먹었다. 한마디로 우리는 변화의 시대에 돌파구를 뚫을 소중한 시간을 탕진한 것이다. 무엇이 시대적 과제인지, 그중 무엇을 꼭 달성할 것인지 깊이 성찰해 본 사람이 정권 내에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 경제의 기본 체질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지 못하는 청년들은 날로 위축돼 간다. 청년들이 희망을 포기한 사회를 보며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는 기성세대가 어른의 자격이 있을까? 전력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 정치 세력이라면 애초에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윤석열 정권 역시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란 엄중한 질문에 직면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미 '인기가 없더라도 구조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아마 그의 마음속에는 근 삼십 년간 어떤 정권도 해내지 못한 대한민국 재도약을 이룬 지도자로 기억되겠다는 결심이 자리 잡은 듯하다.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다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할지, 급격한 내리막으로 미끄러질지를 가를 분수령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우리 세대가 씨름해야 할 시대적 요구를 정확히 짚었다.

그러나 과제를 잘 잡았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첫째, 구조개혁이란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과거의 성공 공식을 파훼하는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이고, 둘째,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톡 까놓고 말해서, 현재의 노동시장과 연금제도, 교육, 규제 환경 중 어느 하나 지금 시대에 걸맞은 합리성을 갖춘 게 없다. 공무원이 시장을 내려다보며 호령하고, 평생 직장을 약속하며, 입사 연도가 멀수록 대우받는 게 우스꽝스러운 시대가 됐지만 각종 제도는 고장난 시계처럼 멈춰 부식돼 왔다.

그런데도 개혁을 외친 전 정권들은 예외없이 모두 실패했다. 굳은살과 비계를 잘라내는 개혁을 두려워하거나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저항할 때, 이를 설득하고 다독일 능력과 신뢰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라를 다시 뛰게 한 정권으로 기억되고자 한다면, 진심으로 절박해야 한다. 개혁 역량이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다는 진정성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말로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권력에 가까운 이들의 허물을 쳐내는 데 엄하고 빨라야 한다. 간과 쓸개도 내버려야 한다. 국가의 심폐 소생을 해야 하는데, 야당이든 재야든, 누구와 손잡아야 하는지 대상을 가리지 않겠다는 낮은 자세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다.

대선 후 이미 1년이 흘렀고, 이번 주엔 여당 전당대회가 치러진다. 정부와 여당의 1년 성적표에는 잘한 것과 못한 것이 섞여 있어 마냥 흡족하지는 않다. 구조개혁이란 난제를 성공시킬 만큼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격랑의 시대 나라를 책임진 정부와 여당이 대한민국호를 절대 좌초시켜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국민과 공명하고 믿음을 얻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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