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친구 장례식 다녀온 새 까맣게 변해버린 집…"차라리 집에 있었더라면"

어렵게 구한 소소한 일상 터전 다 타버려… 복구 비용 수천만원 예상
무책임한 남편과 별거 후 이일 저일 전전하다 난소암 판정…궁핍 더 심해져
오갈 데 없어 경로당서 '눈칫잠'…벽지 껍질 벗겨내느라 손톱 밑 늘 새까매

지난 3일 김금숙(65) 씨가 그을림으로 가득찬 새까만 벽을 걸레로 열심히 닦고 있다. 금숙 씨의 집 내부는 지난 1월 발생한 화재로 다 전소됐다. 윤정훈 기자
지난 3일 김금숙(65) 씨가 그을림으로 가득찬 새까만 벽을 걸레로 열심히 닦고 있다. 금숙 씨의 집 내부는 지난 1월 발생한 화재로 다 전소됐다. 윤정훈 기자

낯선 천장이 익숙한 삶도 있다.

지내는 곳도, 하는 일도 늘 일정하지 않았던 김금숙(65) 씨의 삶이 그랬다. 그러한 삶이 8년 전 경북의 한 시골집에 정착한 뒤로 차츰 변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마당 텃밭에서 가지를 가꾸는 일도 익숙해졌고, 집 앞 저수지와 마늘밭 주위를 산책하는 것도 어느새 일상이 됐다. 지루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집에 있었으면 큰 화를 입었을 겁니다. 천만다행이네요."

그랬기에 소방관이 한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집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불을 일찍 발견해 집을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금숙 씨는 검게 탄 천장을 올려다봤다. 낯선 천장이었다.

◆고된 노동·값싼 월셋집 전전… 겨우 자리 잡은 경북 시골집 화재로 전소

남편을 만난 건 일본 오사카에서였다. 금숙 씨는 오사카에서 약방을 운영하는 큰 삼촌댁에서 약방 일을 거들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친구 소개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남편을 알게 됐고,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해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세상에서 금숙 씨를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남편은, 사실 금숙 씨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1998년 첫 번째 음주 사고를 낸 것도 모자라 2년 뒤 두 번째 음주 사고를 냈다. 사고 수습비로만 1억원을 썼다.

남편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음주를 즐기며 가정에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고, 이에 남편에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금숙 씨는 무작정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다. 이후 혼자 대구에서 대리운전, 식당일, 택시기사, 건설현장 일용직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14년 전 '난소암' 판정을 받고 자궁과 양쪽 난소 2개 모두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암은 치료했지만 이후 힘든 일은 할 수 없게 된 금숙 씨의 생활은 점점 더 쪼들려갔다. 대구와 경산의 싼 월셋집을 찾아다니느라 거처도 늘 불안정했다.

도저히 대구에선 보증금을 감당하기 힘들어진 금숙 씨는, 8년 전 현재 살고 있는 경북 한 농촌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지인이 별장처럼 쓰는 집이었는데, 보증금 없이 월세 17만원, 집안 내부 관리를 해주는 조건으로 이곳에 살았다.

금숙 씨는 집 근처 자활센터나 목욕탕 등에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갔다. 때론 밭에서 마늘 캐는 걸 거들고 일당을 받기도 했다. 여전히 외톨이 신세에 경제적으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대구에서의 삶보다는 훨씬 나았다. 대구에서 살았던 집들은 모두 감옥처럼 비좁고 답답했지만, 이 집은 넓고 마당도 있어 쾌적했다. 마당에서 고추나 가지를 심어 기르는 것이 금숙 씨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랬던 금숙 씨의 소중한 보금자리는 현재 그을린 냄새만 남은 폐허로 변했다. 금숙 씨는 지난 1월 26일 친구의 장례식이 있어 외출해 다음 날 오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금숙 씨는 문을 열자마자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집안의 모든 벽과 바닥이 모두 새카맣게 타버렸고, 가구와 전자제품 등 집기들도 죄다 녹아있었다. 집 구조상 연기가 밖으로 많이 안 나와서 이웃들도 화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부에 산소가 부족했고, 나무 등 가연물도 없었기 때문에 불은 집안을 전소시킨 뒤 스스로 소멸했다. 배터리 충전을 하느라 현관 입구 쪽 콘센트에 연결해 놓은 청소기에서 발생한 전기 누전이 원인이었다.

◆집 잃고 경로당에서 생활, 끼니는 라면·햇반… 집 복구 비용 마련 '막막'

오갈 데가 없는 금숙 씨는 이후 동네 경로당에서 지내고 있지만, 어르신들 눈치를 보느라 경로당에선 잠만 자고 있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있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폐허가 된 집에 가서 잔해 청소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까맣게 타버린 벽지의 껍질들을 벗겨내느라 금숙 씨의 손과 손톱 밑은 늘 새카맣다. 씻으려면 목욕탕에 가야 하는데, 한번 갈 때 7천원이나 들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있다. 식사도 이웃에게 빌린 라면을 휴대용 가스버너에 끓여 먹거나, 친구에게 받은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데워 먹는 게 고작이다.

사실 씻고 먹는 것보다 원상복구에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더 큰 문제였다. 고맙게도 다니던 교회 사람들과 친구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지붕 패널 교체와 내부 청소 등 화재 수습에 힘을 보태줬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 장판과 벽 도배도 새로 하고, 창문도 모두 다시 달아야 한다. 싱크대, 화장실 공사도 해야 하고, 녹아내린 가구와 전자제품도 다 물어내야 한다. 초기 복구 견적 비용으로만 3천500만원이 나왔다.

생활비 200만원이 없어 빚을 내 돌려 갚다가, 이자를 감당 못 해 결국 신용불량자가 된 금숙 씨가 마련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파산신청은 해놓았지만, 당장에 신용불량자 신세로 할 만한 일이 마땅찮다. 현재 교회와 초등학교 동기회로부터 받고 있는 후원금 25만원으로 한 달을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집 복구 비용을 마련할지 막막하다. 도움 받을 가족도 없다. 부모님은 옛날에 돌아가시고, 첫째 오빠도 오래전 자전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형제들도 위암, 췌장암, 갑상샘암 등으로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안 좋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라 손을 벌릴 형편이 못 된다. 8년 전 이혼한 남편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결국 금숙 씨가 자신의 두 손으로 헤쳐나가야 했다. 요즘 금숙 씨는 집 화장실 타일 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화장실 공사 견적을 내보니 300만원이 나와서,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타일을 제거해야 한다고. 쭈그려 앉아 맨손으로 타일을 벗기는 금숙 씨의 두 손은 오늘도 새카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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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한국 어학당에서 인연으로 맺어져 임신했으나 640g '극단저체중출산아' 낳아 수억원 치료비 필요한데 보험 적용도 안 돼 막막한 응웬탄히엔 씨 부부에게 2,669만원 전달

640g '극단 저체중 출산아'를 낳아 수억원의 치료비 필요한데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보험 적용도 안 돼 막막한 베트남인 응웬탄히엔 씨 부부(매일신문 2월 21일 자 10면)에게 2천669만6천21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구미현대병원 25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이영석 20만원 ▷라선희 3만3천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조혜란 2만원 ▷송재일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조재홍 1만원 ▷김태상 1만원 ▷김종식 1만원 ▷박미화 1만원 ▷이서영 1만원 ▷이현민 1만원▷정혜원 1만원 ▷이순덕 5천원 ▷이진기 5천원 ▷조철제 5천원 ▷'명수슬기준서' 10만원 ▷'무진. 청안입니' 1만5천원 ▷'지현이동환이' 1만원 ▷'따스한햇살' 5천원 ▷'지성이' 2천원 ▷'채영이' 2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폭력적인 남편과 연락두절된 뒤 보이스피싱 당해 4천800만원 날려 극단적 선택 시도하고 이후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뇌출혈까지 겹친 박동채 씨에게 2,459만원 전달

폭력 남편에게 맞아 청각장애가 생기고, 보이스피싱을 당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주변 도움으로 재기해 열심히 일하던 중 뇌출혈까지 겹친 박동채(매일신문 2월 28일 자 10면) 씨에게 48개 단체, 171명의 독자가 2천459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탑리더스아카데미 1기 일동 25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세원정공물산 1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주)한라개발 50만원 ▷다우약품 50만원 ▷세무법인송정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태린(양홍석)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크로스핏힘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근우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주)태광아이엔씨(박태진)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극동특수중량(김형중)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산교회(김명묵)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명산업주식회사(김재홍) 5만원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주)동신통신 3만원 ▷국민국선도풍각수련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인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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