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나의 플레이리스트

배원 첼리스트

배원 첼리스트
배원 첼리스트

흔히 "클래식 음악은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백년이 흐른 지금까지 클래식음악이 계속 연주되는 것은 그 음악에는 우리와 같은 삶의 이야기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빼곡히 적어낸 음표에는 그들의 여정 속 희로애락이 표현돼있다. 그 음악의 흐름을 따라 듣다 보면 행복한 삶, 불행한 삶, 자신 혹은 다른 이에 대한 사랑,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느낀다.

나는 마음의 빈 곳을 종종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음악들로 채워간다. 길지 않은 짧고 간단한 소곡들의 서정적인 선율은 나를 편안함으로 이끌어준다.

가끔 거장들의 주름이 자글한 손등 위로 그려지는 소곡들의 연주를 찾아볼 때면 꼭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생에 마지막 연주에서 들려준 트로이메라이(꿈)와, 동화를 읽어주는 듯한 표현력의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의 아름다운 크라이슬러 소곡 연주들을 찾아 듣는다. 노년의 시간을 마주한 그들의 초연하고 겸허한 연주는 나의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닮고 싶은 여류 첼리스트 쟈클린 뒤프레의 음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젊은 시절 남편 바렌보임과의 정열적인 사랑으로 엮어낸 싱그럽고 청청한 명반들은 초인적이라 할 만큼 나에게 거대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또한 내가 첼로 다음으로 좋아하는 악기는 피아노다. 종종 피아노 음반 듣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러시아 태생의 그리고리 소콜로프와 포르투갈의 여류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다. 그 두 대가의 연주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극명하게 다르지만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한 메세지를 가져다 준다.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음악의 색채와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은 아주 다르지만 두 사람의 연주 모두 큰 자극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소콜로프의 한음한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 있는 호소력과 악흥의 순간을 토해내는 열정적인 연주는 내 마음이 압도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러시아 대륙을 달리는 듯한 그의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연주는 강한 질주의 힘을 가짐과 동시에 명쾌하다.

반면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연주는 시종일관 섬세한 표현력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다.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힌 소리는 우리의 마음에 온화하고 아름다운 울림을 전해준다. 특별히 그녀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작품들은 따뜻함, 인내함, 강인함, 단단함, 애절함 등 다양하고 깊은 해석으로 엮어져 있다. 연주자가 작곡가의 곡을 음악으로 이해시킨다는 의미에 있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녀의 연주는 늘 친절하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속 작품을 거장 연주자들의 판타지가 담긴 음악으로 듣는 것은 늘 좋은 의미로 다가온다. 하루의 시간 한 켠에 각자의 마음에 담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를 가져 봄이 어떨까? 클래식 음악이 두드리는 감성으로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한 날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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