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 초대석] 미국의 반도체지원 함정을 넘어설 묘수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미국이 주는 반도체 지원금 520억 달러는 날로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에는 '디테일의 악마'가 숨어 있었다. 지원금을 받으면 유치원을 건립해야 하고, 초과 이익을 공유해야 하며, 중국에 신규 투자를 중지해야 하고, 미국의 국가기관에 생산 라인 접근권을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제조, 투자, 판매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조건이 붙었다.

세계 최정상의 반도체 생산 기술을 가진 한국과 대만 기업은 미국이 쳐 놓은 보조금의 덫에 걸렸다. 미국의 보조금 갈라 먹기를 미끼로 한 첨단 반도체 공장의 입주 강요는 세부 지원 정책의 면면을 보면 후속 지출이 더 커질 판이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가 넘어가면 3교대 산업은 살아남은 역사가 없는데, 1인당 소득 3만3천 달러대의 한국에서도 반도체 경기가 하강하면 적자인데 1인당 소득 7만5천 달러의 나라에서 반도체 생산은 지금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 그런데도 초과 이익이 나면 보조금을 준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면 실익이 별로 없다.

그러나 국제 관계에서는 법보다는 주먹이고, 룰은 강자가 만드는 것이지 약자 편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첨단기술에 있어서 공장을 지을 때까지는 감언이설과 당근으로 유혹하고, 공장을 짓고 나면 기술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금 미국과 중국이 차이가 없다.

진행 과정과 점입가경인 후속 조치를 보면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은 '반도체 패권법'의 다른 이름이다. 첨단 반도체 공장의 노골적인 미국 회귀 정책에 정치 외교와 금융의 양동 작전을 쓰는 형국이다.

그러나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긴다. 산업혁명 이후 첨단기술의 역사를 보면 시발역과 종착역이 같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공장은 보조금을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라 시장 가까운 곳에 짓는 것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61%가 아시아에 있고 미국은 26%에 그치고 있다.

미국의 IRA법은 결과적으로 한국 '배터리 회사 뒤통수 치는 법'이었고, 미국의 새 반도체 지원법은 '첨단 반도체 기술 후려치기법'이다. 새는 모이에 목숨 걸다 죽고, 사람은 공짜 돈에 목숨 걸다 죽는다. 미국의 520억 달러 공짜 돈 뒤에 숨은 칼날을 제대로 봐야 한다.

삼성전자가 170억 달러를 투자해 투자금의 5~15%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1조1천억~3조3천억 원을 받는 것인데 이는 최근 3년간 연평균 41조 원의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 순이익의 2.6~8.0%선이다. 쥐꼬리 보조금을 주면서 생산, 재무, 판매 모든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이 본질인데, 문제는 보고된 정보가 미국의 경쟁 기업에 흘러가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으로 고약한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미국의 내부 사정을 보면 패닉이나 절망할 필요 없다. 미국은 반도체 기술 강국이지만 생산 약소국의 다급함이 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세계 반도체 생산의 37%를 차지하던 미국이 2020년에는 12%로 낮아졌고 이런 추세면 2030년에는 10% 아래로 추락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국과 대만 반도체 '양자(養子) 들이기'에 겁먹지 말고 국익 극대화 차원에서 액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아직 통과되지 않은 반도체 지원법에 '첨단기술 외국 공개 금지법'을 삽입해 개별 기업이 아닌 국가의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둘째, 이익은 주주와 공유하는 것이지 보조금을 준 쪽과 공유한다는 것은 주주 이익의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다. 외국인 지분이 51%가 넘는 한국 반도체 회사의 상황을 이용해 주주 이익의 손실 문제를 걸어 거부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미국에 짓는 5㎚ 공정을 2, 3단계 뛰어넘는 기술 개발로 5㎚ 공정을 레거시 기술로 만들어 버릴 기술 혁신을 하는 것이다.

넷째, 로직 파운드리에서의 약점을 메모리에서 벌충하는 전략이다. 메모리 불황에 1위 기업의 강점을 활용, 감산이 아닌 증산을 통해 3위 기업 죽이기를 통해 시장을 한국의 양대 기업으로 정리하면 메모리만으로도 미국과 얼마든지 협상할 수 있다.

다섯째, 첨단산업에서 진정한 고수는 뒤에 오는 놈을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고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기술(NFT·Nonfungible Tech)을 만들어 상대를 좌초시키는 것이다. Semiconductor가 아니라 Superconductor를 만들어 판을 엎는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 공장 터를 파고 나니 당근이 아니라 족쇄를 채웠다. 미국은 반도체를 '안보'로, 중국은 '심장'으로 규정하고 이 난리인데, 우리는 재벌의 수익 사업으로 안일하게 보면 이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보와 심장 산업 반도체에 미국과 중국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지원을 빨리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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