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보니 오히려 '나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그 깊은 심연을 만나 익사할 수도 있었겠죠. 저도 다시 수면으로 못 올라올 줄 알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계속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기쁨을 느꼈어요."
30대 중반의 나이가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의 긴 시간이었다. 2014년 대구미술관의 'Y아티스트'에 전시한 작품 '방해'(disturbing)가 표절 분쟁에 휘말린 이후, 박 작가는 7년여 간 법정 공방의 칼날 위에 서있어야 했다. 2021년 부산고법이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마침내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작가로서의 불명예, 작업, 전시 중단 등의 수많은 피해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그는 "소송이 끝나고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감정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그만큼 힘든 시기였지만 미술계에서는 누군가가 한 번은 겪어야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학자가 이 사건으로 논문도 발표했고, 법적 선례로써 기준점이 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이 끝난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 작가는 소송을 겪는 동안 발표한 작품들이 강하게 외치던 울분과 화를 조금 내려놓았다. 기존 작업이 작가 개인의 어려움과 한계를 치유하려고 했다면 이번 신작들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양한 구도의 회화, 입체 작업으로 제시한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긍정적이었고 사랑과 화합, 조화와 균형을 작품에 담으려 했다. 예전 작품에서 썼던 우울한 컬러 대신 맑은 기운을 표현해, 관람객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전시의 초점은 '0.917'에 맞춰져 있다. 작가는 애국가, 반야심경 등 전체 텍스트의 91.7%를 숨긴다. 그는 "우리가 보는 수면 위 빙산은 전체의 8.3%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 보여지는 것들로는 실체를 알 수 없고,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간만에 작품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꼈다며 홀가분한 웃음을 지었다.
"송사로 인해 작품을 안하고 있을 당시에 작가로서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더군요. 너무 오래 쉬었고 남들보다 느리게 걸어온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합니다. 그만큼 당분간 작업에 열중하려 합니다. 다시 작업과 전시를 이어갈 수 있게 된 지금,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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