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붕 7광구(한일대륙붕공동개발구역)에 온 국민이 환호했을 때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8년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서쪽 사이 해역인 7광구를 일본과 공동 개발하자는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을 맺었다. 그 뒤로 양국이 이곳에 7개 시추공을 뚫었더니 3개공에서 석유와 가스가 소량 발견됐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해저 어딘가 숨어 있을 자원의 보고에는 오일쇼크가 들이닥쳤던 1970년대의 국민적인 염원이 담겨 있었다. 7광구에서 석유만 시추된다면 어려운 경제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막연한 희망이 투영됐다. 이런 정서를 반영해 7광구를 소재로 한 '제7광구'(정난이)라는 노래도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은 1986년 돌연 공동 개발 중단을 선언했고, 이후 탐사를 비롯해 공동 연구도 중단했다. 한국도 7광구 개발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단독 개발은 불가능하다는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 조항 때문이었다. 온 국민을 열광시켰던 7광구는 기억 속에서 잊혀 가면서 미지의 영토로 남았다.
그 사이 7광구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2028년 6월이면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이 만료된다. 양국이 협정 연장을 결정하기까지는 2년여의 기간이 남았다. 일본은 새로운 국제해양법에 따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유리한 입지를 점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으면 7광구의 상당 영역이 일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일들은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닥쳐올 것이다.
역대 정부는 7광구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지난 2009년 당시 정부는 UN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10년에 걸쳐 만든 150장짜리 정식 보고서 대신 8장짜리 약식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7광구 관련 질의에 외교부는 "관계 부처와 긴밀한 협의하에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민감한 외교 사안 관련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협의 현황 및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기 힘든 점을 양해해 달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석유를 발견하기까지 천문학적인 투입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산유국 지위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자본 투입이 이뤄져야 하다 보니 효율성 측면에서 정부에는 부담이 된다"며 "일본이라는 강대국을 상대로 외교전을 펼쳐야 하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변수도 등장했다. 7광구 일대가 한·중·일 다자간 외교 분쟁으로 비화되는 화약고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동중국해 유전 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2008년 중국은 7광구 바로 옆에서 유전을 발견하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는 협정 만료 후 중일공동개발구역을 7광구까지 연장해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패싱하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일 관계 최대 갈등 요인이었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이 막바지에 이른 만큼 이제는 7광구를 주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외교력을 발휘해 협정 기한을 연기하거나 미국과 에너지 동맹을 맺어 대응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일본이 협약을 파기할 수 있는 기한인 2025년 전에 한국이 일본과 협의를 내려는 시도를 계속해야 국제 재판에서 유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7광구를 쟁취하기 위한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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