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그다지 좋게 보지 않습니다. 역차별을 조장하잖아요."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날을 기념한 '세계 여성의 날'이 올해로 115주년을 맞은 가운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는 '역차별' 논란으로 얼룩지고 있다. 기념일의 취지와 달리 여성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젠더 갈등만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념일 앞둔 한국 사회… 좁힐 수 없는 간극
7일 매일신문 취재진과 만난 2030 'MZ'(밀레니얼+Z세대) 남성들은 '세계 여성의 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이 느끼는 역차별 감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취업 준비생인 30대 남성 A씨는 "페미니즘에 반감이 들고 여성부 폐지에 적극 찬성한다"며 "여성의 날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사원인 30세 남성 B 씨는 "인터넷에서 남성의 날도 만들어야 한다는 글을 본 적 있다"며 "굳이 남성의 날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만 요즘처럼 젠더 갈등이 심할 때는 여성의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구에서 취업 시험을 준비 중인 26세 남성 C씨도 "여성의 날이 있는지도 몰랐다"면서 "여성이 어떤 점에서 불리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인지 모르겠고 생리휴가 등 여성들이 받는 복지는 지금도 충분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MZ 세대 여성들은 남성들이 왜 '여성의 날'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취업 준비생인 D(33) 씨는 "남성들도 살기 힘든 것을 알지만 남의 것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왜 여성 인권운동에 분노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IT업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E(29) 씨는 "여성의 날에 남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 왜 '남성의 날'을 만들자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남성의 날을 만들고 싶으면 여성의 날이 만들어진 것처럼 정당하게 집회를 통해 얻으면 된다"고 지적했다.
영화 회사에서 근무하는 F(33) 씨 역시 "남성의 날을 만들자고 하는 사람들은 365일 중 364일을 남성의 날로 살면서 단 하루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젠더간 두꺼운 벽…정부가 이용"
21세기를 맞은 지금도 한국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고 고용률도 낮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개한 '성별 간 임금 격차(gender wage gap)'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조사국 중 가장 컸다. 여성 고용률도 51.2%로, OECD 회원국 평균(61%)을 크게 밑돌았다.
대구 지역 여성들 역시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임시직으로 일하는 비율이 높았다. 지난해 대구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2022 통계로 보는 대구여성의 삶'에 따르면 대구 여성의 평균임금은 2020년 기준 193만원으로 296만원인 남성보다 103만원 적었다.
안정적으로 고용된 상용직도 여성(28만3천명)보다 남성(38만2천명)이 10만명가량 더 많았고 임시직은 여성이 13만9천명으로 6만7천명인 남성의 2배 수준이었다. 남은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1908년 이후 115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았지만 여성들의 노동, 경제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며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성평등 수치에서 한국은 만년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시민단체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제29차 대구경북여성대회를 오는 8일 오후 3시부터 동성로 옛 중앙파출소 일대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대구노동단체도 지난 6일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 성차별 고용 문제를 언급하며 정부를 규탄하기도 했다.
국내 남성 최초로 여성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신필식 여성역사공유공간 서울여담재 연구위원은 "젠더 갈등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심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하지 않는다면 이념 갈등이나 지역 갈등처럼 향후 돌이킬 수 없는 두꺼운 벽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대화와 신뢰를 통해 서로가 이해하고 발전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지만 정부가 젠더 갈등을 이용만 하다 보니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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