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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91> 신비한 능력을 지닌 평화적인 문제 해결자 홍선의 지혜

미술사 연구자

윤두서(1668-1715),
윤두서(1668-1715), '여협도(女俠圖)', 비단에 먹, 24×1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당나라 때 소설 '홍선전(紅綫傳)'의 주인공 홍선을 그린 윤두서의 '여협도'다. 표주박형 인장 '효언(孝彦)'과 그 아래 '공재(恭齋)' 인장이 있는 작은 그림이다. 호기로운 호협(豪俠), 의리를 지킨 절협(節俠), 신비스런 선협(仙俠) 등 협객의 유형 중에서 홍선은 선협에 속하는 여성협객이다.

고려 때부터 들어온 '태평광기'에 실려 있는 이야기여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읽혔다. 윤두서, 김홍도, 이재관 등이 하늘을 나는 검녀(劍女) 이미지로 홍선을 그린 작품을 남겼다.

가슴 앞으로 검을 멘 앳된 얼굴의 홍선이 긴 옷소매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군대의 깃발 위로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둥근 물건은 금으로 만든 금합(金盒)이다. '홍선전'의 줄거리는 이렇다.

홍선은 절도사들이 각 지역에서 군웅할거하며 당나라가 혼란하던 시절 산동의 노주절도사 설숭의 여종이었다. 설숭이 위박절도사 전승사가 침공할 것이라는 소문에 근심하자 홍선은 그날 밤 머리를 묶어 올려 참새를 조각한 황금 비녀를 꽂고, 자주색 수를 놓은 짧은 겉옷을 입고, 가벼운 신발에 푸른색 끈을 매었으며, 가슴에 용무늬가 새겨진 비수를 차고, 이마에 태을신(太乙神)의 이름을 붙이고 적진으로 향했다. 머리를 오만(烏蠻)식으로 묶었다는 헤어스타일도 나온다.

홍선은 전승사의 막사에 들어가 금합을 훔쳐 새벽에 돌아왔다. 설숭이 곧 사신을 파견해 훔쳐온 금합을 위박으로 보내자 전승사가 놀라 두려워하며 침략을 포기해 화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여협도'에서 가슴 앞으로 검을 메고 있는 것, 이마에 둥근 표지를 붙인 것은 소설의 묘사를 따 것이다. 오른손에 금합을 들고 있으므로 이제 노주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장면이다.

윤두서는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이 이야기에서 홍선은 어린 여종의 신분으로 주인이 침략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는데 그 해결 방식이 무력에 의한 살상이나 희생이 하나도 없었다는 교훈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홍선은 잠든 전승사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윤두서는 환국(換局)정치의 시대를 살았다. 집권세력이 전면적으로 교체 될 때마다 정국이 일진일퇴하며 반복되는 보복으로 희생자가 끊이지 않았다. 반대당은 길에서 우연히 라도 얼굴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던 피비린내 나는 시대였다. 윤두서의 형은 고문을 받다 감옥에서 죽었고, 절친했던 친구는 곤장을 맞아 죽었다. 정치적 견해가 달랐을 뿐 무슨 무력을 행사하거나 반란을 도모한 것이 아니었다.

윤두서가 '여협도'로 의협심 있는 여성신선 홍선을 소환한 것은 그녀의 신비한 능력과 평화적인 문제 해결자로서의 지혜 때문이었을 것 같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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