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역사가 바벨 앞에 선다. 그는 머릿속으로 '할 수 있다'를 수도 없이 되뇐다.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 같으면 우렁찬 기합으로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들이마신 숨을 깊이 눌러 담는 것도 잠시. 순식간에 바벨을 잡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터질 듯이 팽팽해지는 근육.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지나가자 역사는 비로소 안도한다.
역도는 기록의 싸움이다. 그래서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경북도개발공사 역도팀은 그런 싸움에서 숱하게 이겨본 이들이 즐비한 곳이다. 국가대표급 선수들과 전국구 유망주들이 한데 모여 남녀‧부문 가릴 것 없이 메달을 휩쓸고 있다. 이들이 전국 최고 수준의 역도팀이라 불리는 이유다.
경북도개발공사 역도팀이 훈련하는 경북 경산 남천면 협석리 역도장. 이곳에서 선수들은 실전에 버금갈 정도로 훈련에 집중했다. 이희영 감독이 이끄는 경북도개발공사 역도팀은 남자선수인 조민재(61kg), 배문수(61kg) 서희엽(109kg), 남지용(+109kg)과 여자선수 윤진희(55kg), 한지혜(59kg), 박민경(64kg)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강점
역도의 핵심은 최소한의 체중으로 최대한의 중량을 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수들은 무거운 바벨을 지고 무게가 몸에 익을 때까지 수백, 수천번 반복 훈련을 하고 있다. 이들은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체력 훈련을, 오후에는 종목별 기술 훈련에 집중한다.
이희영 감독은 매 훈련마다 날카로운 눈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확인한다. 창단해인 2000년부터 팀을 맡아온 그는 대한역도연맹 지도상을 5차례나 수상한 베테랑 감독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지도자로 국가대표 역도팀에 몸담기도 했다.
이 감독이 역도팀을 이끌며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가족 같은 분위기'다. 마음이 편해야 제 실력이 나온다는 확고한 믿음에서다.
이 감독은 "역도는 부상이 많은 운동이다. 긴장하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다칠 위험이 더 커진다"며 "그래서 선수들과 최대한 소통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한다. 지난해 전국체전 당시 사장님과 직원들이 직접 응원하러 오기도 하는 등 경북개발공사 측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보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밝은 분위기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지혜, 조민재, 남지용은 모두 2004년생 어린 선수로, 팀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중 조민재는 특히 눈여겨볼 선수다. 그는 2017년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시작으로 , 3년 연속 소년체전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2021년, 2022년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도 3관왕에 등극하면서 역도계에 자기 이름 석 자를 알렸다.
이 감독은 "우리는 국가대표급 선수를 영입해 실적을 내기보다는 젊고 유망한 선수를 국가대표로 키우자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며 "물론 어린 선수들이 많은 만큼 대회에서 성적을 내기가 쉽진 않다. 그러나 이들이 훌륭한 선수로 자라 팀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후배들 귀감되는 윤진희‧서희엽
경북도개발공사 역도팀은 중심을 잡아주는 베테랑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윤진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현역 여자 역도 선수 중 최고참인 윤진희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역도 스타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등으로 2012년 다소 이른 은퇴를 했다.
은퇴 이후 윤진희는 역도 지도자로서의 삶을 준비했지만, 2014년 이희영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현역 선수로 운동장에 섰다. 일각에서는 재기가 힘들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희영 감독은 베이징에서 본 윤진희의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을 믿었다. 이듬해 전국체전에서 3관왕을 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한 그는 리우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손에 쥐며 믿음에 부응했다.
윤진희는 "당시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끝까지 올라가보자'는 마음 하나로 훈련에 전념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똑같다. 스스로가 노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이 내 나이가 많다고 얘기해도 내가 즐겁고 행복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라며 "올해 몸 상태는 근 몇 년 중 최고다. 부상 당했던 어깨도 정상적인 상태다. 다가오는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으로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팀의 맏형 서희엽도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실력자다. 2015 아시아선수권 대회 3관왕, 2017 세계선수권 대회 금메달 등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그는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을 목표로 몸을 만들고 있다.
서희엽은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는데, 최근엔 운동인들도 그 매력에 푹 빠졌다. 2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인 '췌이야TV' 덕분이다. 그는 이 채널을 통해 역도에 대한 다양한 영상과 브이로그 등을 업로드하고 있는데, 구독자가 2만명이 넘는다.
서희엽은 "췌이야는 아내의 이름을 빠르게 발음했을 때 나는 소리다. 비인기 종목인 역도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유튜브 활동을 결심했다. 어렸을 때 꿈이 연예인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며 "처음엔 어색해서 운동하는 영상만 올렸는데 이젠 농담도 곧잘 한다. 나중에 선수 생활을 마쳐도 유튜브를 통해 역도를 알려나갈 계획"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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