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멋지다 순신아'

이상준 사회부장

이상준 사회부장
이상준 사회부장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학폭)을 주제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를 그렸다.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 드라마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은 극 중 학폭 피해자인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이 학창 시절 자신에게 학폭을 가한 가해자 박연진(임지연)의 '자랑스러운 동문상' 수상 순간을 지켜보면서 "멋지다 연진아"라며 박수를 치는 순간이다. 가해자의 두 얼굴이 보는 이들의 소름을 돋게 한다.

8일 '멋지다 연진아'를 패러디한 '멋지다 순신아'가 SNS를 달궜다. 서울대 교내 언론 '대학신문'이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을 풍자한 한 컷의 만평이 모두의 공감을 샀다.

해당 만평에서 서울대에 입학하는 아들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정 변호사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기울어진 저울을 들고 있는 법관의 모습도 보인다. 뒤쪽에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박수를 치며 "멋지다 순신아"라고 외친다.

2017년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입학한 정 변호사의 아들은 동급생인 피해 학생에게 언어 폭력을 지속적으로 가했다가 전학 처분을 받았다. 피해 학생이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겪고 자살까지 시도한 사건이었다.

정 변호사는 아들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전학 처분 취소소송과 징계 집행정지 가처분 등 '2차 가해'를 주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학폭 징계를 무력화하기 위해 '소송전'이라는 아빠 찬스를 꺼냈다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결국 정 변호사는 지난달 25일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사퇴했다. 아들이 학폭 전력에도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는 소식은 정 변호사 사퇴 이후 지금까지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 변호사를 둘러싼 임명 취소 사태의 또 다른 이면에는 '인사 참사'가 있었다. 정 변호사 아들 사건은 이미 2018년 한 지상파 방송이 보도한 내용이었다. 피해자가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고위직 검사'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새 정부의 인사 라인이 '학폭'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사전에 찾아내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후보자 본인이 스스로 안 적어내서 몰랐다'고 발뺌했다. 인사 추천과 검증을 맡은 윤희근 경찰청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희근 청장은 "경찰청이 아닌 법무부가 인사 검증을 맡았고, 정 변호사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한 장관은 "전혀 알지 못했고. 법무부의 인사정보관리단은 대통령실의 의뢰를 받는 경우에 한해서 기계적 1차적 검증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경찰청은 법무부에, 법무부는 경찰청에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은 '학폭 근절'을 지시했다. 당장 교육부는 학폭 전력을 대입 정시 전형에도 반영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이면, 정부의 인사 참사와 총체적 검증 부실을 둘러싼 제도 개선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본인이 얘기하지 않아 몰랐다"는 책임 회피만 난무할 뿐이다.

'임명 발표 하루 만에 철회'라는 유례없는 결정에도 "몰랐다"면 그만이라니. 국민을 바보로 아는 정부의 말로(末路)를 또 되풀이할 것인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