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조선의 걸 크러시

임치균·강문종·임현아·이후남 지음/ 민음사 펴냄

'조선의 여성'이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가녀리고 연약하며, 조신하게 남성의 뒤에서 묵묵히 내조하는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조선의 걸 크러시' 책은 조선 여성들의 특별한 삶과 서사를 담고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원수를 직접 처단하고 뛰어난 기개와 재주로 영웅의 반열에 오르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요조숙녀, 현모양처라는 정체성을 거부하기도 하고 뛰어넘기도 했으며, 받아들이더라도 주체적으로 선택했다.

조선 여성들에 관한 오해를 깨부수는 이 40가지 이야기는 한국학 연구자들이 실제 역사와 고전소설에서 발굴해 정리한 것이다. ▷복수자들 ▷영웅의 기상 ▷쓰고 노래하다 ▷사랑을 찾아서 ▷뛰어난 기개와 재주 등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부모의 복수를 위해 검객이 된 여성, 남편의 일방적 이혼 요구를 끝까지 방어해낸 여성 등 복수를 실천한 여성들을 모았다. 2부는 조선 시대의 여성 경찰 '다모'를 비롯해 임진왜란 때 일본군 장수를 처단한 여성,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여성 등을 소개한다.

3부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아를 실현한 여성들이 등장하며 4부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했던 여성 등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을 찾아나선 여성들의 얘기를 모았다. 또한 5부에서는 조선 최고의 가수와 기업인 등 뛰어난 기개와 재주를 가진 여성들을 소개한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조선 시대의 사회상도 드러난다. 9년간의 소송으로 남편의 이혼 청구에 저항한 신태영의 이야기는 가부장제의 민낯을 보여준다. 여성들의 사적 복수를 의롭다고 칭찬한 영조와 정조에게서는 법보다 효를 중시한 위정자의 자세를 포착한다.

또한 소설 '방한림전'에 등장하는 동성혼 서사에서는 태동하는 여성주의를, 소설 '이춘풍전'에서는 흔들리는 남성 우위를 통해 조선 말 급변하는 질서를 엿볼 수 있다.

억압적인 세계와 충돌하고 파격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며, 주체적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센 언니'들은 조선 시대에도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분투하며 자신의 꿈을 좇은 여성들의 모습이 지금 여성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책이다. 340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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