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진양철 회장과 반도체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반도체 위기에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순양그룹 회장을 떠올리게 된다. "그게 돈이 되는 기가?"를 신조로 가진 진 회장은 모두가 반대하는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반도체가 돈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진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의욕적으로 투자했지만 미국 등 큰손들의 덤핑 경쟁에 휘말려 위기에 직면했다. 아들을 비롯해 주변에서는 반도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 진 회장은 미래에서 온 손자 진도준으로부터 "고래 싸움에 새우가 등 터지기 전, 새우가 몸집을 불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과감한 투자로 반도체에서 성공을 거뒀다. 진 회장의 실제 모델은 삼성 반도체 신화를 만든 이병철 회장이다.

386 운동권으로부터 '매판자본' 비판을 받은 한국의 기업 오너들은 맨주먹으로 반도체를 비롯해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에서 세계적 기업을 키워 냈다. 그 과정에서 기업 오너들이 잘못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땀으로 경제성장이 가능했고, 국민 대다수가 풍요를 누렸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를 떠받쳐 온 반도체가 사면초가 신세다. 지난 2월 반도체 수출액은 59억6천만 달러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지난 1월 반도체 재고율은 265.7%로 1997년 3월 이후 25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 패권을 추구하고 나선 것도 반도체 기업들에 큰 위기다.

반도체는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등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반도체가 무너지면 경제는 물론 국가가 위기에 직면한다. 국가적 비상사태란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다수 기업 오너들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철학을 갖고 기업을 경영했다. 사업을 통해 국가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이다. '사업보국'을 처음으로 사시(社是)로 내세운 이가 이병철 회장이다. 반도체 성공 뒤엔 국가적 뒷받침이 있었다. 여야가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반도체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을 이달 중 처리하기로 했다. '재벌 특혜법'이라며 반대하던 더불어민주당이 태도를 바꿔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애써 키워 놓은 고래(반도체)를 사지(死地)로 내몰지 않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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