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재명과 극단적 선택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70~1980년대 일본에서는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보호하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꼬리를 물었다. 1988년 미공개 주식을 정계 거물들에게 뿌려 시세 차익을 얻게 한 '리크루트 사건' 때 당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총리의 전직 비서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뇌물 수수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케시타 총리는 사퇴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그러나 30년 동안 다케시타의 '금고지기'를 했던 전직 비서가 "모든 것은 내가 한 일"이란 말을 남기고 영원히 입을 닫으면서 다케시타는 살아날 수 있었다.

1976년 8월 록히드 뇌물 사건 때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운전기사가 자동차 안에서 배기가스를 마시고 유명(幽明)을 달리한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다나카는 록히드의 공식 대리인인 마루베니(丸紅)사로부터 5억 엔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5억 엔을 운반했던 운전사는 검찰에 이 사실을 진술했다. 그는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1979년 더글러스 그라만 뇌물 사건 때도 핵심 피의자인 니쇼이와이(日商岩井)상사 상무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조직과 회장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2005년 세이부(西武) 그룹의 주식 보유 비율 허위 신고 사건 때도 사장과 실무자가 그룹 지주회사 오너를 위해 그렇게 했다. 이런 죽음을 두고 "진실을 묻어 버림으로써 일본 사회가 더 선진화되는 계기를 틀어막았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전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전 씨는 성남 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돼 검찰의 영상 녹화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이 대표 관련 인물 중 숨진 이는 모두 5명에 이른다. 이 중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제기한 이 모 씨(지병 사망)를 제외하고 4명이 모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섬뜩하다. 그리고 억누를 수 없는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