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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철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대구지부장 "총신이 벌겋도록 쏘고 수류탄 던졌다"

[정전협정70년]⑤낙동강 방어선 전투(상, 1950. 8. 3~31)

이동철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대구지부장
이동철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대구지부장

"조금 전까지 이야기 나누던 전우가 북한군 총탄에 시뻘건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머리가 확 돌았어요. 그때부터 무서운 게 없더군요. 총신이 달아오르도록 M1소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지요. 전투가 소강상태가 되면서 전우의 주검을 수습할 때 불쌍하다는 생각이 엄습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전투 수암산 고지전에 참전했던 이동철(91)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대구지부장은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치열했던 전투 현장과 눈앞에서 산화해간 전우에 대한 기억은 어제처럼 또렷하다.

이 지부장은 1950년 8월 중순 국군 1사단 12연대 2대대 5중대 이등병으로 다부동 전선에 투입됐다. 훈련은 첫날 부대편성과 응급처치, 둘째와 셋째날 소총 분해결합, 실탄 8발 사격이 고작이었다. 1사단에 전입한 그는 다음날 해질녘 수암산 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나이 열여덟이었다.

그는 "수암산 고지를 차지하려고 돌격하는데 박격포와 수류탄이 비처럼 쏟아졌어요. 북한군 박격포는 정말 지독했고, 그때 전우들이 정말 많이 죽었다"면서, "이후 영천 신녕전투 현장으로 이동했고, 이후 수색병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대장이 수류탄 가지고 적 탱크를 저지할 사람을 뽑는다고 해 자원했는데, 이는 수색대원을 모집하기 위한 연막이었다. 수색대원이 되어 도로에 대전차 지뢰를 매설해 후퇴하던 적의 마차 3대와 적군을 폭사시키기도 했다"며,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지원이 없었으면 우리는 수류탄, 야포, 박격포 한발도 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지부장이 기억하는 백선엽 사단장은 무섭지만 따뜻한 지휘관이다. 1사단 사령부가 있던 동명국민학교에서 백 사단장을 처음 봤다. 그는 "처음 본 사단장님은 무서웠다. 큰 덩치와 철모에 시커먼 보안경을 걸친 모습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도였다"면서, "그러나 북진 과정에 박격포 포신을 메고 가는 병사를 보면 자신이 대신 메고, 지프에서 내려 병사들과 함께 담배 연기를 흩날리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정말 부하를 사랑하는 지휘관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고(故) 백선엽 장군님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것은 너무나 분하고, 개탄스럽습니다. 만약 다부동이 뚫렸다면 대구와 부산이 함락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겁니다. 우리의 형제자매, 전우의 목숨을 빼앗고 전 국토를 피로 물들인 북한을 적이라고 부리지도 못하는 그들은 다부동전투 영웅 백 장군님을 입에 올릴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한신협·매일신문=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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