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금융산업을 모르는 금융당국?

홍준표 경제부 기자
홍준표 경제부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산업을 모르는 것 같아요."

다소 도발적인 이 말은 최근 점심을 함께한 은행원 A의 푸념이다. 이날 화두는 금융당국이 시중은행 과점 체제 해소를 위해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저축은행을 제1금융권인 지방은행으로 전환 가능토록 하는 검토안이었다. 그는 "저축은행 입장에서 지금도 수익이 잘 나오는데 굳이 규제가 더 많은 1금융이 되고 싶겠어요? 저 같으면 절대 안 해요"라고 회의적 반응을 내놓았다.

이게 그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은행원 B를 만났다. 그 역시 같은 주제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B는 "취지는 알겠는데 이게 과연 되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금융이 '돈놀이' 같지만, 사실은 비율 산업이에요. 저축은행이나 지방은행이 금융당국에서 은행권에 요구하는 갖가지 내부 충족 비율을 맞출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이자 장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금융당국이 부랴부랴 끄집어낸 이야기가 이처럼 '현실의 벽'이 뭔지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의 시작은 은행을 늘리는 게 과연 가능하냐는 데서 시작한다.

당장 저축은행이 1금융 전환을 위한 자금을 댈 기업이나 투자자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방은행 전환을 위해 250억 원 이상 자본력이 있어야 하나 업계에서는 적어도 5조 원은 있어야 정상적인 자금 운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국내 저축은행 79곳 전체 자금 중 80%가 상위 10개사에 몰려 있을 정도로 양극화가 심한데 상위 4위에 랭크된 페퍼저축은행의 자산 규모가 겨우 7조 원을 넘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설령 '돈줄'을 찾더라도 대주주 적격성, 비금융주력자 한도 등 요건 충족을 맞출 수 있는 저축은행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축은행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금융·산업 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비금융회사)이 은행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는 비율인 비금융주력자 한도는 지방은행에 15%로 제한되어 있다. 반면 저축은행은 비금융주력자 한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동일인 주식 보유 한도 규제도 지방은행은 15%여서 이를 맞추려면 보유 지분 매각이 필요하다.

같은 이유에서 지방은행도 시중은행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중은행은 한도가 비금융주력자 4%, 동일인 주식 보유 10%로 지방은행보다 낮다. DGB대구은행을 보유한 DGB금융지주는 지분율 4%를 넘는 산업자본이 없지만, 여타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려면 기존 대주주가 지분을 대폭 낮춰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방은행이 있는 지역에 지방은행(저축은행 전환)이 추가로 들어서면 역내 금융기관 전반의 수익성과 건전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근심도 적잖다. 기존 지방은행조차 거점 지역에서 높은 경쟁에 치여 존재감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생 은행이 지역민에게 어필할 만한 포인트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지방은행 관계자 입에서 "지방은행은 한국은행이 1997년에 책정한 '60% 이상 중소기업 의무 대출' 정책 탓에 위험대출이 많고, 대손충당금도 많이 잡아야 해 자금 조달 비용이 크다. 그런데 금융 소비자는 이를 모르니 '지방은행이 왜 지역민에게 저리로 대출해주지 않느냐'며 외면한다. 이미 체급 차이가 너무 큰데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한다고 시중은행 과점 체제가 깨지겠느냐"는 앓는 소리가 나올까.

벌써 이번 논의가 '용두사미'로 귀결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부디 기우이길 바라며 금융당국이 최종 방안을 내놓을 6월 말에는 '탁상'과 A, B 모두 만족할 만한 결론에 도달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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