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는 산수화, 초상화, 도석인물화, 풍속인물화, 동물화, 화조화, 정물화 등 거의 모든 장르의 그림을 그린 화가이자, 학문 세계가 성리학, 천문, 지리, 수학, 의학, 병법 등에 걸치는 전방위적인 학자였던 천재다. 화가로서 윤두서는 고전명작을 판화로 재현한 중국의 회화교본을 따르기도 했고, 문학작품이나 독서물에서 촉발된 상상력에 의거한 그림도 그렸으며, 자신이 목격한 주변의 대상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윤두서의 그림 중에는 검을 차고 하늘을 나는 당나라 소설 속 여성협객도 있고, 바구니 들고 나물 캐는 산비탈의 조선여성도 있다. 여협이라는 환상적 인물상을 그린 것도 색다르지만, 평범한 농촌여성을 그렸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아무도 이웃사람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렇게 관찰하고 사생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여협과 촌부는 서로 상반된다. 윤두서처럼 극적으로 불균질한 주제를 다룬 경우는 흔치않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존재하는 시공을 돈독하게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본질 속에서 너머를 꿰뚫어 실행으로 옮긴 비저너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두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속하기도 하고, 그 이후 전개된 새로운 시대의 첫머리에 속하기도 한다.
'채애도(採艾圖)'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나물 캐기'는 윤두서의 풍속화다. 이른바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보통사람들의 당대적 삶의 모습이란 한 때의 세상 풍속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화면 한가운데에 두 여성을 크고 당당하게 그렸다. 바구니를 든 쪽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허리를 수그려 손칼을 내밀고, 그 옆에서는 어깨너머로 뒤쪽을 내려다본다.
주인공임에도 옆모습과 뒷모습으로 잡은 것이 특이해 보이는데 사실은 옆쪽에서 관찰하며 스케치하는 화가의 자연스러운 시점을 반영한다. 걷어 올린 소맷자락과 허리춤에 말아 넣은 치맛자락, 흰 머릿수건에서 노동의 모습이 실감난다. 수건 아래로 머리칼이 비죽이 흘러내렸다. 관찰과 사생에 근거해 어떤 감정을 싣지 않고 차분하게 그렸다.
윤두서가 열어놓은 풍속화라는 신세계는 그의 아들과 손자로 이어졌다. 아들 윤덕희는 독서하는 조선여성을 그리며 아버지를 계승했고, 손자 윤용은 짚신 신고 호미든 여성을 뒷모습으로 그리며 할아버지를 이었다. 윤두서의 9남 3녀 중 맏아들인 윤덕희만 그림으로 유명하고, 윤덕희의 5남 4녀 중 둘째 아들 윤용이 그림으로 알려졌으나 이후로는 그림의 가풍이 끊어졌다. 풍속화는 해남윤씨 집안에서 삼대로 이어지며 한때의 시도에 그치지 않았다.
풍속화는 윤두서 이후 조영석, 강희언, 김두량 등이 뿌리를 단단하게 했고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등 화원 출신 대가들이 나타나 만개했다. 그 길을 연 선구자가 공재 윤두서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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