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필수 의협회장 "간호법 통과되면 의료체계 붕괴될 수도"

간호법·의료인 면허취소법 '의료 악법' 규정…13개 보건복지의료단체 저지 입장
"교통사고 등 모든 범죄에 대해 의료인 면허 박탈은 헌법 위배 소지도"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처벌 막아야 필수의료분야 기피 현상 줄어들 것"

지난 2월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간호법 및 의료인면허법의 본회의 직회부 의결을 강행처리한 이후, 의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두 법안을 '의료 악법'으로 규정하고 결사 저지의 뜻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두 법안 통과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의대 설립 등을 놓고 극한 의정(醫政) 대립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굴복한 것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의사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투쟁 모드로 전환했고, 보건의료 13개 단체와 더불어 오는 26일 서울에서 10만명 규모의 대규모 집회를 연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을 만나 두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간호사 단독 의료행위 근거로 악용할 것"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간호사법안은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되나.

-간호사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이라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간호사 업무 범위가 더욱 확장되어 타 보건의료직역들의 영역을 침해하게 된다.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간호사 없이는 간호조무사가 업무를 할 수 없게 되어, 많은 조무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또한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을 고졸 학력으로 제한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도 간호법이 제정되면 ▷보건의료정보관리사의 진단명 및 진단코드 관리 업무, 보험심사 업무 ▷응급구조사의 의료기관 밖 장소에서 응급구조활동 ▷임상병리사의 혈액검사 및 심전도검사 ▷방사선사의 초음파 검사도 간호사에 의해 심각하게 침범될 것이다.

▶의협은 간호사특혜법이라고 부르는데, 구체적으로 독소조항은 무엇인가.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는 '개설한 의료기관 내에서만' 진료할 수 있고,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간호사도 '의료기관 내에서만' 업무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호법은 그 목적 조항에 '지역사회'를 포함하고 있다. 간호법의 이 조항은 향후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감독과 진료 보조를 넘어서서 '지역사회'에서 단독으로 무면허 의료행위에 나서게 될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

간호사단체는 "간호법의 대부분 내용은 의료법에서 차용한 것이니 문제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현행 의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을 고집하고 있다. 따라서 간호법이 제정되면 곧바로 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 단독 개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 시도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의협은 간호사법과 함께 의료인면허취소법을 '의료 악법'으로 규정한다. 어떤 내용인가.

-의료인 면허취소법은 범죄 종류와 상관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로 의료인 결격사유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서 의료인 면허 취소는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우리는 성폭력 및 특정강력범죄 등 사회적 비난이 큰 범죄에 대해 의료인 면허 결격사유를 확대하는 것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계류 중인 의료인 면허취소법은 교통사고 등 모든 범죄를 면허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기에,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두 법안이 시행되면 의료체계가 붕괴된다고 주장하는데, 과잉 해석은 아닌가.

-간호법이 만들어지면 의료 관련 사항에 대해 통일성 있는 법적용이 어렵고, 해석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보건의료직역이 독립법 제정 요구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각 직역 개별법이 난립할 경우 업무범위 충돌 및 갈등으로 의료현장의 혼란이 가중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현재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이 된다.

▶간호법 등 제정과 관련해 의료단체와 충분한 논의가 있었나.

-국회에서 관련 보건의료단체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논의와 협의 절차가 거의 없었다. 지금이라도 여러 보건의료단체의 절박한 호소를 받아들이길 요청한다. 간호법이 특정 직역인 간호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법이라는 역사적 오점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특례법 만들자"

이 회장은 필수의료 붕괴를 막고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은 의료인들이 적극적으로 종사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소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기피현상에 대해서 의대 신설 또는 정원 확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핵심은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에 대한 저수가 문제, 의료사고 책임 문제, 열악한 근무환경 등 지원 대책 부재로 인해 몸담으려는 의사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아무리 의사 수를 늘려도 필수의료 기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된다면 필수의료 분야 의사는 계속 부족할 것인데 의대 정원 증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의협에서 생각하는 필수의료 활성화 해법은 뭔가

-필수의료는 환자 생명과 직결된 분야이기 때문에 아무리 최선을 다하더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위험이 상존한다. 선의의 진료를 하는 의료인에 대해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는 것이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다.

최우선적으로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여 고의나 중과실 없이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기소나 형사처벌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고위험의 응급 수술이나, 분만 중 발생할 수 있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피해보상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고, 국가가 기금을 조성하여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자원 불균형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방의료원, 보건소는 의사를 구하고 싶어도 지원자가 없다고 한다.

-지방 의료기관 구인난이 모두 지역 의사 부족 때문만은 아니며, 열악한 근무 조건·불명확한 업무 범위·의료사고 책임 전가 등 불합리한 계약 조건이 원인인 사례도 많다. 모 지방의료원의 경우 외래환자 진료, 입원환자 관리, 퇴근 후에도 응급 콜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연봉이 몇 억인데도 지원자가 없다고 하는데, 살인적인 업무량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

여기에 더해서 대형병원 위주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추진되어 의료비 부담을 낮춰주다 보니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었고, 반면 지방 의료기관들은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고 위기가 가속화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문제되는 것이 수도권 대학병원들의 분원 설립 경쟁이다. 8개 대학병원이 10개의 분원 설립을 추진하는 등 2028년이 되면 수도권에서만 6천개 이상 병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대학병원의 경쟁적 분원 설립은 지역 내 환자는 물론 의료인력까지 무분별하게 흡수하여 주민 건강권을 돌보는 지역의료 생태계를 파괴해 의료전달체계를 붕괴시킬 우려가 크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1962년생으로 전남대 의대를 졸업했다. 흉부외과 전문의로 나주시 의사회장과 전라남도 의사회장,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을 거쳤다. 지난 총선 당시 의협 내 총선기획단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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